잿빛 나비

by 윤지안


희미한 오후였다.
거칠게 일렁이는 바람 속에,

한 마리 나비가 천천히 떠돌고 있었다.
빛을 잃은 잿빛 날개는 흩어지는 구름과

별 다를 바 없었고,
그저 이 세상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처럼

허공을 맴돌았다.

어쩌다 여기에 온 걸까.
누구도 그 나비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 나비를 기억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비는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이유로,

어딘가에 닿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나비를 오래 바라보았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 잊으려 했던 것들,
마음속 어둡고 차가운 기억들이

그 작은 존재에 스며 있는 것 같았다.
나비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도 분명히 울고 있었다.
날개 한쪽이 찢겨 나갔고,

나머지 한쪽은 무겁게 처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비는 하늘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염없이 이어지는 저물녘,
붉지도 않고 푸르지도 않은, 모호한 색깔 속을
나비는 애써 헤엄치듯 날아다녔다.
언제부터였을까.
나 또한 그 나비와 닮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그저 살아있다는 감각만을 품고 떠도는 존재.
그래서였을까,

나는 잿빛 나비가 슬프다고 느끼면서도 이상하게 위로받았다.
세상에 사라지는 것들은 늘 조용하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스러진다.
하지만 사라지는 그 순간에도,

존재는 존재였고, 아픔은 아픔이었다.

잿빛 나비는 다시, 천천히 사라져갔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 나비를 눈으로 좇았다.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아주 오래도록,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그저 가슴 어딘가가, 묵직하게 내려앉을 뿐이었다.
그 밤,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작고 연약한 것들을 조용히 끌어안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듯이.
그리고 잿빛 나비처럼,

조용히, 부서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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