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밖은 온통 회색빛 물안개로 뒤덮여 있었고,
빗방울들은 유리창에 부딪혀 투명한 눈물 자국을 만들었다.
나는 낡은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희미해져 가는 기억 조각들을 더듬었다.
그 애가 떠나던 날도, 이렇게 비가 왔던 것 같다.
우산도 없이 서 있던 내게 그 애는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아주 작게 속삭였지.
"안녕." 그게 마지막 말이었어.
마지막을 예감했을까.
그 애의 어깨에, 젖은 머리칼에, 차가운 뺨에...
희미한 연보랏빛이 감돌았던 것 같기도 해.
꼭 저 먼 곳에서 온 신비로운 나비처럼.
손을 뻗으면 부서져 버릴 듯한 그런 색깔.
그 후로 나는 연보랏빛만 봐도 가슴이 시려왔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라일락 꽃잎이나,
저녁 노을에 잠시 스치는 하늘의 색깔,
오래된 책갈피에서 떨어진 말라버린 제비꽃 조각까지.
모두 그 애를 떠올리게 했고,
동시에 그 애가 더는 여기 없다는 사실을 잔인하게 일깨웠다.
가장 괴로운 건,
때때로 눈을 감으면 아주 잠깐... 그 애의 희미한 형체와 함께
연보랏빛 나비 한 마리가 아른거린다는 거야.
너무나 아름답지만, 너무나 연약해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나비.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지려 하면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려. 마치 그 애의 마지막 인사처럼.
오늘도 비가 내린다.
유리창의 물방울들이 흐느끼는 눈물 같아 보인다.
내 방 안은 온통 회색인데,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는 아직도 연보랏빛 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다.
영원히 잡을 수 없을,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운 나비.
그 애가 남기고 간 부서진 조각들처럼,
내 안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연보랏빛 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