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창가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을 멍하니 바라봤다.
투명한 햇살이 희미하게 방 안을 채우고 있었지만,
그 따스함은 마음까지 닿지 않았다.
창문 밖,
오래된 감나무 가지 위에
작은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희미한 푸른색 날개. 바람이 불자,
그 나비는 힘겹게 날갯짓을 하더니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약했구나…”
유리는 중얼거렸다. 꼭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마음 속 어딘가가 찢긴 듯 아려왔다.
지난 겨울,
은우가 떠난 뒤로 유리는 그저 숨만 쉬는 사람이었다.
함께 걷던 골목길, 손끝이 닿던 공원의 벤치, 우연히 마주친 거리의 연주자.
그 모든 순간이 여전히 살아 있는데, 은우는 없었다.
“나, 나비 좋아해.”
처음 만났던 날, 은우는 그렇게 말했다.
그가 유리의 스케치북 속에 그려진 나비를 바라보며 웃던 표정은 지금도 생생했다.
그래서 유리는 그 뒤로 나비만 그렸다.
수천 장의 나비.
날개를 활짝 편 것, 접은 것, 부서져가는 것,
날아오르는 것.
하지만 그가 떠난 후로는 단 한 장도 그릴 수 없었다.
며칠 전, 은우의 마지막 편지가 도착했다.
병원에서 쓴 듯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유리야, 넌 언젠가 다시 날 수 있을 거야.
너는 나비처럼 여려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강하니까.
바람에 휘청이더라도 날아오르기를 포기하지 마.”
하지만 유리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바스라진 나비라는 걸.
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애써 눈을 감았지만,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갑게 식은 뺨 위로 사라지듯 스며들었다.
그 순간, 창밖에서 무언가 날갯짓했다.
또 다른 나비였다. 이번엔 연한 노란빛.
그 작은 생명은 바람을 가르며 창문 쪽으로 다가왔다.
유리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나비는 망설임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와,
벽에 붙은 오래된 나비 그림 옆에 살포시 앉았다.
유리는 숨을 멈춘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부서져 있던 마음 한 귀퉁이가,
아주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비록 다시 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바람을 느낄 수는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오랜만에 스케치북을 꺼냈다.
그리고 손끝으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한 마리의 나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날개가 조금 부서진 나비였다.
하지만, 그 나비는 분명히 날아오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