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내리고, 숲은 숨을 멈췄다.
정은은 깜박이는 가로등 불빛 끝에서 차를 멈췄다. 눈앞에는 ‘출입금지’ 팻말이 반쯤 떨어져 있는 오솔길이 있었다.
그녀는 차 안에서 손목의 상처를 바라봤다.
이미 오래된 흉터 위로,
미세한 자국들이 겹겹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탈피를 반복하는 애벌레의 흔적처럼.
그녀는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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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풀벌레 소리도, 바람의 숨결도 없었다.
대신, 어딘가에서 희미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 후우, 후우 —
마치 수백 마리의 나비가 날개를 펴는 듯한,
축축하고 얇은 소리.
“정은아.”
낯익은 목소리였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죽은 아버지였다.
그는 손에 나비를 한 마리 쥐고 있었다.
반쯤 으깨진 파란 나비.
“넌 아직 여길 떠날 수 없어.”
정은은 숨을 삼켰다.
“왜요? 이제 다 끝났잖아요.”
“끝나지 않았어. 네가 기억하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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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야가 흔들렸다.
숲은 갑자기 밝아졌다.
수천 마리의 나비가 빛을 머금은 듯 날아올랐다.
나비의 날개마다 누군가의 얼굴이 비쳤다. 웃는 얼굴, 울고 있는 얼굴,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들.
그중에는 어릴 적의 자신도 있었다.
“아버지… 나비들이… 저예요?”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가 잃어버린 날들, 네가 찢어버린 기억들이지. 다 여기서 자라났어.”
정은은 손을 내밀었다.
한 마리의 나비가 손끝에 앉았다.
그리고 순간,
그녀의 눈앞에 어린 시절의 장면이 펼쳐졌다.
겨울날, 크리스마스이브. 술에 취한 아버지의 손, 깨지는 유리잔, 숨죽여 울던 어린 자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나비를 놓쳤다.
나비의 날개가 부서지자, 숲 전체가 동시에 흔들렸다.
수천 마리의 나비가 소리를 내며 그녀의 주위를 돌았다.
“날 잊지 마.”
“날 놓지 마.”
“우린 네 안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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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나 날갯짓 소리는 머릿속에서 계속 울렸다.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그만! 나는 다시 태어날 거야. 이 숲에서 나갈 거야!”
그 순간, 나비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남은 건 새벽의 안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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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경찰은 숲에서 버려진 차를 발견했다.
운전석 위에는 작은 파란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 아래엔 메모 한 장이 있었다.
> “이제 기억을 다 돌려줬어요.
숲은 조용해요. 나비들도 떠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