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언니에게
《잿빛 나비》
11화. 언니에게
> 언니에게.
> 이 글을 언니가 정말 보게 될지는 모르겠어.
사실은, 오랫동안 망설였거든.
내가 이걸 남기고 떠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언니를 더 아프게 하는 건 아닐까,
수없이 생각했어.
> 근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언니는 언니대로 나 없이도 살아가겠구나.
아플 거고, 무너질 거고,
그래도 결국엔 살아낼 거라는 걸…
내가 가장 잘 알았어.
> 그래서 이건 마지막 인사 같은 거야.
부탁도 아니고, 고백도 아니고,
그냥 내 마음을 한번만 털어놓고 싶었어.
**
은서는 편지를 읽는 내내
손끝이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글씨 하나하나가 마음속 오래된 문을 두드리는 듯했다.
**
> 언니.
나는 언니가 참 부러웠어.
늘 앞에 서 있었고,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그런 언니 옆에 있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어.
> 근데 알고 있었어.
언니가 날 위해 얼마나 많은 걸 삼켰는지.
아빠가 소리 지를 때,
엄마가 주방 바닥에 주저앉을 때,
언니가 내 손만 꼭 잡고 있었던 거.
> 그 손이 아니었으면,
나는 그때 이미 어딘가로 사라졌을지도 몰라.
**
은서는 눈을 감았다.
그 시절, 꼭 잡았던 손.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었던 눈빛.
그 모든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
> 언니,
나 무대에 서고 싶었어.
빛이 나지 않아도, 누가 박수를 쳐주지 않아도,
그냥 거기 서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 근데 어느 순간부터
무대보다 언니 얼굴이 더 자주 떠올랐어.
그건 아마, 내가 언니를 닮아가고 있었기 때문일 거야.
> 언니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어.
그래서 내가 언니 대신 흔들리기로 했어.
바람을 대신 맞기로.
> 그렇게라도, 언니가 조금은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
은서의 눈가에 조용히 눈물이 맺혔다.
그것은 소리 없는 울음이었고,
한없이 가벼운 슬픔이었다.
오랜 시간 눌러 담았던 감정들이,
이제야 아주 천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
> 언니.
나는 언니의 봄이 되고 싶었어.
그게 내 진심이야.
> 그러니까,
언젠가는 꼭 다시 살아줘.
꼭 웃어줘.
내가 언니를 많이 사랑했다는 사실만은,
절대로 잊지 말고.
> 다시 언덕에 꽃이 피면,
그때 나를 조금만 떠올려줘.
> 그걸로 돼.
그걸로 정말, 괜찮아.
> ― 서은이.
**
편지의 끝을 덮은 은서는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말이 없었다.
오직 바람과 햇살, 그리고 꽃잎 사이로 스치는 기억의 잔향만이
그녀의 마음을 감싸 안고 있었다.
**
그날 밤, 은서는 창문을 열어두고 잠들었다.
잠결에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잘 지내고 있어, 언니.”
그 목소리는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아주 오래된 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