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혐오

by 윤지안


«자기혐오의 그림자와 마주 앉는 법»

가끔은 거울 속의 내가 낯설다.
표정 하나, 말투 하나,
지나가듯 던진 말의 뉘앙스까지 모든 것이
나를 향한 증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순간의 나는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알면서도,
동시에 가장 잔인한 재판관이 된다.

“넌 왜 이 모양이니?”
“또 실패했어.”
“남들은 다 하는데 왜 너만 안 돼?”
자기혐오는 종종 이런 속삭임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친숙하고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자기혐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그것은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곤 한다.
더 잘하고 싶었는데,
누군가에게 더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기대에 닿지 못한 스스로에게 실망해 버린 마음.
그 실망이 깊어지면 방향을 잃고,
결국 나라는 존재 전체를 잘못된 것처럼 단정해버린다.

자기혐오가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것이 진실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혐오는 진실이 아니다.
그저 마음 한쪽에 오래 쌓인 상처가 만들어낸

왜곡된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는 종종 그 그림자를 나라고 오해한다.
그렇지만 어둠이 형태를 크게 만들 뿐, 실체는 생각보다 작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자기혐오를 하나의 인물처럼 상상한다.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떨군 채
“넌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겁 많고 지친 누군가처럼.
그러면 묘하게도 그 목소리가 조금 덜 위협적으로 들린다.
마치 “나는 상처받았어”라고 울먹이는 사람 같아서,
미워하기보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자기혐오와 마주 앉아보면,
어느 순간부터 그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우리가 진짜로 마주해야 하는 것은 ‘혐오’가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던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그 마음을 붙들기만 해도 방향이 달라진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서툴 수 있지만,
그래서 더 나아질 여지가 있다.
자기혐오는 성장이 멈춘 증거가 아니라,
성장하고 싶다는 무언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나를 비난하는 대신, 이렇게 묻고 싶다.
“너는 무엇이 두려웠니?”
“어디서 아팠니?”
“내가 도울 수 있을까?”

그 질문 하나가,
나를 미워하는 마음 대신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불러온다.
그리고 이해는,

아주 작은 빛처럼 어둠의 형태를 천천히 지워버린다.

어쩌면 우리는 조금 늦었을 뿐,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빛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