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균열의 문장»

by 윤지안


〈균열의 문장〉

거울을 열어보니
안에 들어 있던 나는
오늘도 나를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는 말이 없었고
나는 말을 잃었고
둘 사이엔
끊어진 문장의 하얀 공백만
소리 없이 흔들렸다.

밤이 되자
그 공백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차갑고 묵직한 물,
내가 버린 표정들이 가라앉아 있는 물.

나는 손을 담가
가장 익숙한 얼굴을 건지려 했지만
건져 올린 것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움직이는
그의 손이었다.

빛은 양쪽에서 동시에 꺼지고
우리는 동시에 눈을 뜨고
누가 누구였는지 고백하지 못한 채
하나의 그림자를
둘이서 나눠 쓰기 시작했다.

새벽,
그림자는 지치지 않는데
나는 점점 가벼워졌다.
단어를 잃고,
깊이를 잃고,
마침내 발자국조차
나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오늘도 거울을 닫는다.
닫히는 틈 사이로
그가 웃는다.
내가 아닌 내가,
나보다 더 단단한 내가.

나는 문 바깥에 남았고
문 안쪽엔
나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끝내까지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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