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나는 나를 피할 수 없었다

by 윤지안


거울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잔인하다.

나는 오랫동안 거울을 피했다.
단순히 얼굴이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보다 내가 나를 먼저 알아볼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거울은 내가 준비한 표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가면을 쓰기 전의 얼굴,
말로 꾸미기 전의 생각,
변명으로 덮기 전의 죄책감을 그대로 비춘다.

거울 앞에 서면, 나는 항상 한 박자 늦는다.
웃으려고 할 때 이미 웃고 있고,
괜찮다고 말하려 할 때 이미 알고 있다는 눈을 하고 있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서 먼저 살아온 것처럼.

그날도 별다를 것 없이 세면대 앞에 섰다.
불을 켜고, 얼굴을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보다 조금 더 오래 나를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만 도망쳐."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들었다.
그 목소리는 외부에서 오지 않았다.
내가 나에게 해주지 않았던 말들이
한꺼번에 되돌아온 소리였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처리해 왔다.
선택하지 않은 게 아니라
선택할 용기가 없었던 순간들,
상처 준 적 없다고 믿고 싶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날들.

거울은 그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애써 잊어버린 얼굴들을 차례차례 꺼내 보여주었다.
질투하던 나,
비겁하게 침묵하던 나,
사랑을 핑계로 통제하던 나.

그 얼굴들은 모두 나였다.
다만, 내가 인정하지 않은 나였을 뿐이다.

숨이 막혔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문을 나서기 전에 깨달았다.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는 사람은
거울 속의 내가 아니라
거울을 부수지 못하는 나라는 것을.

Self-Confrontation(직면)은 용기가 아니다.
그건 처벌에 가깝다.
스스로를 심문하고,
변명할 수 없는 증거를 자기 손으로 제출하는 행위.

거울은 판사가 아니다.
단지 증거물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단 한 번도 왜곡하지 않고 보여주는.

결국 나는 고개를 들었다.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나를 속이지 않기 위해.

거울 속의 내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이 공포는 거울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외면해 온 시간들이 응집되어 만든
형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날 이후로
거울은 여전히 말하지 않지만,
나는 안다.

다음번에 마주할 때 더 무서운 것은
거울 속의 내가 아니라
그때도 또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하는
나 자신일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