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나비였다.
정확히 말하면,
나비라고 믿고 싶은 것이었다.
그것은 늘 같은 시간에 나타났다.
벽에 붙은 작은 그림자처럼,
혹은 창문에 비친 잔상처럼.
색은 없었고, 날갯짓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나비라고 불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비라는 단어가 주는 가벼움이,
그 존재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숫자였다.
처음 숫자가 보였을 때,
나는 그것을 우연이라 생각했다.
나비의 그림자 아래, 바닥에 희미하게 찍힌 숫자 3.
다음 날은 4,
그다음 날은 5.
숫자는 항상 하나씩 늘어났다.
빠짐도, 반복도 없었다.
나는 그 숫자를 세지 않으려 애썼다.
숫자를 인식하는 순간,
그것이 나를 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숫자는 의지와 무관하게 눈에 들어왔다.
벽의 얼룩처럼, 시계의 초침처럼,
숨을 쉬는 것처럼.
어느 날 나는 거울 앞에서 그 나비를 보았다.
정확히는 나비의 그림자였다.
거울 속에는 나만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내 어깨 뒤,
분명히 존재하지 않아야 할 위치에 그림자가 겹쳐 있었다.
날개를 펼친 형상.
그러나 그것은 나비가 아니라,
나의 윤곽을 닮아 있었다.
내가 조금 움직이자, 그림자는 아주 늦게 따라왔다.
마치 계산이 끝난 뒤에야 반응하는 프로그램처럼.
그날 바닥에는 숫자 12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숫자는 시간이 아니었다.
횟수도, 날짜도 아니었다.
숫자는 나의 '확인'이었다.
나비가 나타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가 그것을 인식한 횟수.
피하지 못한 시선의 수.
무시하려다 실패한 순간들.
숫자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그림자는 조금 더 또렷해졌다.
윤곽은 점점 나와 같아졌고,
나와 다른 점은 오직 하나였다.
그 그림자에는 눈이 없었다.
눈이 없다는 것은,
바라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것은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를 알고 있었다.
마지막 숫자를 본 날, 나는 나비를 잃었다.
더 이상 날개도, 형태도 없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그림자 하나였다.
그리고 바닥의 숫자.
0
그 순간 깨달았다.
나비는 처음부터 자유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가볍게 만들기 위한 장치였고,
숫자는 나를 해체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그림자는 내가 끝내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나 자신이었다.
나비는 숫자를 세지 않는다.
세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하지만 그림자는 세지 않아도
절대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