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처음 본 것은 고백 직전이었다.
그날의 공기는 묘하게 얇았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유리처럼 차가운 빛이 폐 속으로 스며들었다.
말은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데,
이미 세상은 그 말을 알고 있는 듯 고요했다.
창가에 앉아 있던 나는
손끝으로 찻잔의 가장자리를 더듬고 있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바닥에 고여 있었지만,
속은 자꾸 식어갔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든 작은 그림자 하나.
유리창에 가볍게 부딪히며 멈춘 나비였다.
나비는 언제나 환상의 쪽에서 날아온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
이름 붙이기 전에 사라지는 감정들,
‘혹시’와 ‘만약’ 사이를 맴도는 빛의 가루 같은 것들.
그날의 나비도 그랬다.
날개는 투명한 비늘로 덮여 있었고,
아주 미세한 떨림으로 공기를 흔들었다.
그 떨림이 내 심장과 닮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고백하려 했다.
오래도록 품고 있던 말이었다.
좋아한다는 말.
아니, 좋아한다는 것보다 더 깊고,
더 어둡고, 더 밝은 말.
밤의 가장 깊은 곳에서
겨우 길어 올린 물처럼 조심스러운 말.
그러나 고백은 언제나 환상과 닮아 있다.
입 안에서는 완벽한 문장이 되다가도,
혀끝에 닿는 순간 산산이 부서진다.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연습한 장면이,
현실에서는 낯선 빛으로 뒤틀린다.
나는 이미 수십 번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백했고,
수십 번 상처받았고, 수십 번 안도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환상이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비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비는 고백의 화신일지도 모른다고.
짧은 생을 가진 존재.
그러나 그 짧음 때문에 더 눈부신 존재.
닿는 순간 사라질지라도,
한 번은 날아올라야만 하는 존재.
고백도 그렇다.
말해버리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지금 이 상태, 애매하고 몽롱한 이 온도,
가능성으로만 빛나는 이 시간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환상은 안전하다.
아직 상처받지 않았고,
아직 거절당하지 않았으며,
아직 버려지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만 재생된다.
나는 유리창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고,
나비는 잠시 망설이다가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 작은 몸짓이 방 안의 공기를 바꾸었다.
가볍지만 분명한 진동.
나는 그 진동을 따라 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말은 생각보다 낮은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고백은 거창하지 않았다.
화려한 수식도, 완벽한 타이밍도 없었다.
그저 떨리는 공기와 약간 젖은 눈동자,
그리고 스스로를 내어주는 작은 용기 하나.
나는 그에게 내 환상을 건넸다.
그동안 혼자서 키워온 세계를,
나만의 색으로 채색한 풍경을,
혹시 그가 함께 걸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그것은 무방비한 행위였다.
마치 나비의 날개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는 것처럼
연약하고,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수많은 미래를 보았다.
받아들여지는 나,
거절당하는 나,
어색하게 웃는 나,
울음을 참는 나.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피어났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이후의 일은 선명하지 않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고백은 이미 끝났는데,
내 안의 환상은 여전히 나비처럼 날고 있다.
어떤 대답을 들었든,
그보다 더 선명한 것은 내가 날아올랐다는 사실이다.
고백은 결과가 아니라 움직임이었다.
붙잡고 있던 감정을 공중에 놓아주는 일.
두려움과 함께 뛰어오르는 일.
나비는 어느새 창밖으로 날아가고 없었다.
방 안에는 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남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따뜻했다.
환상은 깨졌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내가 더 이상
유리창 안쪽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조금은 환상이고,
고백은 언제나 조금은 추락이다.
그러나 그 추락 속에서만 우리는 잠깐,
아주 잠깐, 나비가 된다.
그리고 나는 안다.
다시 사랑하게 되면,
또다시 나비를 보게 되리라는 것을.
또다시 고백이라는 환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리라는 것을.
그때도 나는 떨리겠지만,
그 떨림마저 살아 있다는 증거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