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시간을 날개에 묻혀 다닌다.
그 작은 몸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처럼 갈라지고,
그 사이로 시간의 결이 드러난다.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지만, 분명히 느낀다.
아주 미세한 떨림,
손끝으로 스치듯 지나가는 보드라운 감촉처럼.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직물에 가깝다.
가로와 세로로 엮인 수많은 순간들,
그 위를 걷다 보면 발바닥에 닿는 촉감이 매번 다르다.
어떤 날은 거칠고, 어떤 날은 비단처럼 미끄럽다.
나비는 그 직물 위를 날아다니며 결을 읽는다.
바람의 방향과 햇빛의 농도,
꽃잎의 습기를 통해 오늘이라는 날의 짜임새를 가늠한다.
어릴 적, 나는 마당 한구석에서 나비를 쫓아다녔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끝내 잡히지 않는 거리.
그 애매한 간극이 좋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그러나 늘 반 뼘쯤 모자란 자리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사라지던 그 존재.
그때 나는 몰랐다. 그것이 곧 시간이라는 것을.
시간도 늘 그랬다.
지금 이 순간을 붙잡고 싶어 두 손을 모으면,
이미 다른 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침의 햇살은 오후의 그림자로 바뀌고,
웃음은 어느새 추억이 되었다.
나비의 날개에 묻어 있던 가루처럼,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것들.
나비의 날개에는 보이지 않는 비늘이 촘촘히 박혀 있다.
그 미세한 입자들이 빛을 받아 색을 만든다.
파랑, 노랑, 때로는 검은 벨벳 같은 깊은 색.
시간의 결 또한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겪는 사소한 감정들—
잠깐의 설렘, 이유 없는 불안,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듣다 문득 찾아오는 쓸쓸함—
그 모든 입자들이 모여 오늘이라는 색을 만든다.
한 번은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젖은 화단을 바라본 적이 있다.
빗물에 젖은 흙냄새와 커피의 쌉쌀한 향이 뒤섞여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때 창문을 스치듯 한 마리 나비가 지나갔다.
비 속에서도 날아가는
그 얇은 몸을 보며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들었다.
시간도 이렇게 젖은 채로, 무거운 채로,
그래도 앞으로 흘러가고 있겠지.
나비의 수명은 짧다.
하지만 그 짧음은 가볍지 않다.
오히려 짧기에 더 또렷하다.
하루의 빛을 전부 받아내는 날개처럼,
한 계절의 온도를 온몸으로 겪어내는 생.
우리는 흔히 오래 남는 것을 소중하다 말하지만,
사실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더 깊이 새겨지기도 한다.
시간의 결은 손으로 더듬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몸으로 안다.
늦여름의 저녁 공기가 살결에 닿는 방식,
오래된 책장을 넘길 때 손끝에 남는 종이의 거칠음,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릴 때
가슴 안쪽이 천천히 따뜻해지는 감각.
그 모든 촉각이 시간의 결이다.
나비는 그 결을 타고 흐른다.
결을 거스르지 않는다.
바람을 거슬러 날기도 하지만,
결국은 바람과 함께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인지 나비를 보고 있으면 조급함이 사라진다.
붙잡으려 애쓰지 않아도,
날아가는 모습 자체로 충분하다는 듯.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나비를 잡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날아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었던 것이라는 걸.
그래서 더 간절했고, 그래서 더 허망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기에
우리는 다음 계절을 만난다.
나비가 사라진 자리에는 또 다른 꽃이 피고,
또 다른 날개가 공기를 흔든다.
시간의 결은 끊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울고 웃는 동안에도,
잠들어 있는 사이에도,
누군가를 잊고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에도.
나비의 날개처럼 연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수없이 많은 실로 단단히 엮여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한 마리 나비가 날고 있을 것이다.
그 작은 날갯짓이 공기를 흔들고,
보이지 않는 결 위에 미세한 파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파문은 언젠가 우리의 하루에 닿아,
설명할 수 없는 기분으로 번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날개에 시간을 묻힌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을 따라,
때로는 헤매고 때로는 반짝이며.
나비가 꽃 위에 잠시 내려앉듯,
우리의 삶도 한순간 어딘가에 머물다 다시 떠난다.
그 짧은 머묾 속에서,
시간은 가장 선명한 색으로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