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은 하루가 스스로를 접는 방식이다.
빛은 천천히 식어가고,
공기는 조금 더 낮게 숨을 쉰다.
그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시계를 본다.
시계는 늘 정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무표정하게 초침을 움직이며,
사람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시간을 밀어낸다.
그러나 황혼 속에서만큼은
시계도 어쩐지 망설이는 것처럼 보인다.
빛이 주황과 보랏빛 사이를 맴도는 동안,
초침은 바늘이 아니라 숨결이 된다.
나는 그 느려진 시간 위에
나비 한 마리를 올려둔다.
나비는 시간을 재지 않는다.
날갯짓은 초 단위가 아니라
빛의 결을 따라 움직인다.
꽃잎 위에서, 바람의 틈에서,
자신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모른 채
그저 오늘의 공기를 마신다.
황혼 속의 나비는 투명하다.
등에 묻은 금빛이 점점 옅어지다가
마침내 저녁의 색으로 스며든다.
그 순간,
시계의 숫자들은 의미를 잃는다.
우리는 왜 시간을 세는 걸까.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조급하게 만드는 걸까.
어쩌면 시계는 우리를 재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사라지는 속도를 확인하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초침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황혼은 그 두 감각을 동시에 열어둔다.
하루가 끝나가는 슬픔과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안도.
나는 손목 위의 시계를 풀어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창가에 앉아 나비를 상상한다.
짧은 생을 가진 존재는
어쩌면 우리보다 더 깊게 시간을 느낄 것이다.
그들에게는 "나중"이 없다.
오직 지금,
그리고 이 빛.
황혼은 그 사실을 부드럽게 알려준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색이라는 것.
초침은 숫자가 아니라 맥박이라는 것.
그리고 삶은
정확히 재어지기보다
가만히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기 직전,
마지막 빛이 유리창에 걸린다.
그 순간,
나는 나비의 날갯짓을 듣는다.
아주 작고,
아주 연약하지만,
세상의 어떤 시계보다 분명한 소리.
황혼은 지나가고
시계는 다시 또박또박 제 역할을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시간은 언제나
숫자보다 부드럽고,
바늘보다 가볍고,
나비의 날개처럼
한순간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임을.
그리고 그 사라짐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시간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