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잔상

by 윤지안


1. Photo

사진은 시간을 접어 만든 얇은 종이의 방이다.
그 안에는 아직 식지 않은 오후의 빛과,
말하지 못한 표정과, 미처 닫히지 못한 문틈이 남아 있다.

나는 가끔 오래된 사진을 꺼내어 손끝으로 더듬는다.
광택지 위로 스치는 손가락은 지금의 나인데,
그 안에 서 있는 나는 이미 과거의 사람이 되어 있다.
그 거리감이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사진 속의 나는 아직 상처를 모르고,
아직 이별을 겪지 않았고,
아직 어떤 계절이 나를 어떻게 바꿀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아이가 곧 알게 될 것들을.

사진은 증거이면서도 동시에 거짓말이다.
그날의 웃음은 선명하지만,
그날의 불안은 찍히지 않는다.
셔터는 빛만을 데려가고, 그림자는 남겨둔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사랑한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사진은 말 대신 침묵을 남긴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2. Star

별은 닿을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아름답다.
도시의 불빛이 잠시 숨을 고르면
하늘은 검은 천을 펼치듯 열리고,
그 위에 작은 구멍들이 뚫린다.
우리는 그것을 별이라고 부른다.

사실 별은 이미 오래전에 떠난 빛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반짝임은
과거의 누군가가 보냈던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생각이 좋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이 모두 현재가 아니라는 것.
지금 이 순간조차 누군가에게는
이미 지나간 빛이라는 것.

별을 바라보면,
인간의 마음도 작은 우주라는 걸 알게 된다.
수없이 많은 생각과 감정이 서로 충돌하고,
가끔은 폭발하고,
가끔은 조용히 타오른다.

사랑도 그렇다.
한때는 눈이 부시도록 밝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빛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로 흘러가
누군가의 밤을 아주 조금 밝혀준다.

나는 그래서 별을 믿는다.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빛은 어딘가에 남는다는 것을.


3. Butterfly

나비는 가볍게 날지만,
그 생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애벌레의 시간을 견디지 않고는
저 투명한 날개를 가질 수 없다.

나는 종종 나비를 부러워했다.
저토록 아름다운 색을 입고
저토록 조용히 공기를 가르는 존재.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날개는 수많은 어둠의 시간 끝에 얻은 것이다.
고요한 번데기의 내부에서
몸이 완전히 녹아내리고 다시 만들어지는 고통을 지나
비로소 펼쳐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의 번데기를 통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재구성되고 있다.

나비는 오래 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눈부시다.
순간을 전부로 쓰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의 나를
아직 날지 못한 애벌레라고 부르지 않기로 한다.
지금 이 시간도
이미 변태의 한복판일지 모르니까.


Epilogue

사진은 과거를 붙잡고,
별은 과거의 빛을 보내며,
나비는 현재를 온몸으로 살아낸다.

나는 그 셋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기억을 안고,
빛을 바라보며,
변화를 견디는 사람.

어쩌면 인생은
사진처럼 멈춰 있고 싶어 하면서도
별처럼 멀어지고,
결국 나비처럼 떠나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남는 것은 언제나
한 번 반짝였던 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