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지면, 어떤 역들은 유난히 아름다워진다.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곳을 지나가는 계절이 너무 선명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기차역도 그런 곳이다.
역 주변의 오래된 벚나무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켜온 역무원처럼
플랫폼을 따라 조용히 서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잠시 동안 이 역을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풍경으로 만들어 놓는다.
기차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
플랫폼에는 묘하게 고요한 공기가 흐른다.
멀리 철로는 두 줄의 은빛 선이 되어
어디론가 길게 이어지고,
낡은 벤치 위에는
누군가가 남기고 간 시간처럼
꽃잎들이 하나둘 쌓여 있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벚꽃은 소리 없이 흩어진다.
마치 눈처럼,
하지만 조금 더 따뜻하게.
꽃잎들은 공중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레일 위에 내려앉고
플랫폼 끝에 내려앉고
때로는 누군가의 가방 위에도
살며시 내려앉는다.
그 순간만큼은
이 역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같은 계절 안에 있다는 사실을
서로 알게 되는 것 같다.
곧 기차가 들어올 것이다.
멀리서 철로가 미세하게 떨리고
어딘가에서 낮은 진동이
천천히 가까워진다.
누군가는 이곳을 떠날 것이고
누군가는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도시로 향하고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벚꽃은
그런 사정을 전혀 묻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듯
힘껏 피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 역에서는 떠나는 장면도
어쩐지 슬프기보다는
한 편의 장면처럼 느껴진다.
꽃잎이 흩날리고
기차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그리고 또다시
플랫폼이 비어 가는 그 순간까지.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역은 다시 조용해진다.
철로 위에는 여전히 꽃잎이 남아 있고
벤치 위에도
플랫폼의 노란 선 위에도
분홍빛 흔적들이 가볍게 내려앉아 있다.
마치 누군가가 방금
봄이라는 편지를 읽고
조용히 내려놓고 간 것처럼.
어쩌면 이 역은
사람들을 태우고 보내기 위해서만 있는 곳이 아니라
이렇게
계절을 잠시 붙잡아 두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람이 다시 불 때마다
벚꽃은 또 한 번
천천히 흩날릴 것이다.
마치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지만
그래도 충분히 아름다웠다”라고
조용히 말해 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