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이라는 말은 늘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은 아주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먼저 시작된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더 이상 따뜻하게 들리지 않는 저녁,
익숙하던 길이 낯설게 느껴지는 귀갓길,
손에 쥐고 있던 온기가
언제부터인지 설명 없이 식어버린 순간 같은 것들.
그럴 때 우리는 모른 척한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이건 그저 잠깐의 흔들림일 뿐이라고.
하지만 세계는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아주 천천히,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 안에서 먼저 끝나기 시작한다.
마치 한 마리의 나비가
어디선가 조용히 날갯짓을 할 때처럼.
그 작은 떨림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공기를 스치고,
시간을 건너
결국 우리의 계절을 바꿔놓는다.
그래서 어떤 끝은
사건이 아니라
감각이다.
빛이 조금 덜 반짝이고,
바람이 조금 덜 향기롭고,
마음이
이유 없이
조금 덜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
그 미세한 차이들이 쌓여
어느 날 우리는 깨닫는다.
아,
이미 한 번 끝났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세계는 계속된다.
아침은 오고,
커피는 식고,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하늘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맑다.
끝났는데,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이 기묘한 상태 속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인지
진짜 중요한 것은
세계가 끝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에 무엇을 바라보느냐인지도 모른다.
무너진 자리 위에서도
여전히
작은 것들은 남아 있다.
창가에 내려앉은 햇빛,
식탁 위의 사소한 온기,
그리고
어디선가 또 날고 있을
또 다른 나비의 움직임.
어쩌면
세계의 끝이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시작되는 경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모른 척하며 살아간다.
이미 한 번 끝났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아직
무언가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