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씨, 주말에 미팅 잘 다녀오셨어요?"
책상 맞은편의 윤 대리가 말을 걸어왔다.
유리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말끝을 놓치지 못했다.
"미팅이요?"
"아, 그 교수님이랑 만나는 거요.
옛날에 같이 일하셨다던—이름이 뭐더라, 권도… 뭐였는데."
권도?
그 이름은 유리의 귀에 날카롭게 박혔다.
그녀는 잠깐 말을 잃고 눈을 깜빡였다.
“…권도현이요?”
"네! 아, 기억하셨네요. 주말에 봤다고 하셔서—"
윤 대리는 태연히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유리의 머릿속은 멍해졌다.
그녀는, 그 어떤 미팅도 한 적이 없었다.
주말 동안 집에만 있었다. 혼자 있었다. 언제나처럼.
**
점심시간.
유리는 휴게실 구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SNS, 일정표, 사진첩…
어느 것에도 ‘권도현’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아니, 그 이름은 있었다.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검색창에 '권도현'을 치자, 학회 발표, 연구 인터뷰, 공동 번역 서적,
심지어는 자신이 쓴 블로그 포스트까지 떠올랐다.
“도현과 함께한 밤하늘은, 끝없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충격에 손을 떨었다.
이건 분명히 자신이 쓴 문장이었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누군가의 기억이 ‘입혀진’ 듯한 감각이었다.
**
그날 저녁, 유리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검색창에 “권도현”을 다시 입력하고,
결과 하나하나를 눌러 확인했다.
그리고 한 문서에서 그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되었다.
그는 눈에 익었다.
익숙하다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그녀는 그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기억이라기보단… 꿈이었다.
"이게… 어떻게…"
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뒤로 기대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방문 너머에서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심장이 멈췄다.
그녀는 혼자였다.
**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아무도 없었다.
거실은 조용했고, 불도 꺼져 있었다.
하지만 바닥에는, 한 장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손글씨였다.
그리고 그 필체는…
자신의 것과 완벽히 같았다.
> “나는 너야. 그리고 나는 죽었다.”
- 또 다른 이유리
**
유리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멀쩡하던 일상이, 실금처럼 갈라지더니,
결국 파열음을 내며 찢어졌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망상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이 세계에 침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