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균열 속의 문

by 윤지안


유리는 밤이 두려워졌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마다,

전등 하나쯤은 꺼져 있었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은 어김없이 어긋나 있었다.
그리고 거울, 모든 거울은 그녀를 두 번 비췄다.
하나는 ‘지금의 유리’,

또 하나는 다른 어딘가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유리.

그것은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다.

“중심 유리.”
그녀는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더 확신했다.
무언가가 이 세계를 뚫고 들어오고 있고,

그 시작이 자신이라는 것을.

**

회사 계단을 내려오던 오후,

유리는 복도 끝에서 누군가를 마주쳤다.
검은 후드티, 선명한 은색 운동화.
낯선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너무 익숙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너잖아.”

유리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눈앞의 여자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상처 입은 눈빛을 한 채 서 있었다.

자신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온, 또 다른 유리.

“몇 번째야?”
짧은 유리가 물었다.
유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짧은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23번째.

우리 중 몇은 죽었고, 몇은 미쳐버렸고,

몇은 지금 이 세계를 삼키려 하고 있어.
…그 문을 연 건 너야. 기억나?”

유리는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너는 그걸 잊도록 선택된 유리야.

‘선택받은’ 게 아니라.
나머지 우리가 전부 기억을 짊어졌고,

너는… 네가 깨지 않으면

모든 우주가 무너지는 심장이 된 거야.”

**

그녀는 유리를 데리고 작은 골목 안,

폐건물로 들어갔다.
벽에는 기묘한 표식들이 그려져 있었고,

지도 같은 도표가 빽빽하게 메워져 있었다.
그 중심에는 한 이름이 반복되어 적혀 있었다.

권도현.

“그는 살아 있어?”
유리가 물었다.
짧은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내가 있던 세계에서는 죽었어. 실험 직후에.
하지만 어떤 유리들은,

아직도 그와 함께 살아가고 있어.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이 세계를 열고 네 자리를 대신하려 해.”

“…왜?”

짧은 유리는 정면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애절했고, 동시에 무너질 듯 단단했다.

“도현을 살리기 위해서.”

**

그날 밤, 유리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보낸 사람: K.D.H
제목: 기억의 문은 닫지 않아도 돼.

본문에는 단 한 문장만이 적혀 있었다.

> “너는 내 세계에서 나를 떠났지만,

나는 네 세계로 갈 수 있어.”



그 순간, 그녀의 창문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것은 나비의 날개처럼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톡, 톡,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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