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문 너머, 나

by 윤지안


창문을 두드린 그 손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아주 얇고, 투명하며,

가시광선의 경계를 벗어난 듯한 감촉이 있었다.

유리는 천천히 커튼을 걷었다.

창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있었다.

그녀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거울 속의 자신이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반 박자 늦게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이제 열어도 돼. 너도 보고 싶잖아.

그 반대편의 가능성.
도현이 살아 있는 세계, 우리가 함께였던 기억들, 너라는 존재가 하나가 아닌 수백 개였던 이유.』

그 순간, 거울에 균열이 일었다.
그리고 유리는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차가운 강철 위에 누워 있었다.
머리 위로 네온 불빛이 스치고,

공기 중에는 희미한 철 냄새가 맴돌았다.

낯선 실험실.
그리고— 그 맞은편에서 권도현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야… 이번엔, 기억하고 있지?”

그의 눈에는 슬픔과 기쁨,

그리고 죄책감이 겹쳐 있었다.
유리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다가와,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감촉은 확실히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따뜻하고, 익숙하고, 가슴 저릿하게 아픈.

“이건 너의 진짜 세계가 아니야.

하지만 내가 널 구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어.
너를 이곳으로, 대신 보내는 것.”

“…대신?”

그 순간, 그녀의 뒤편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그리고— 유리는 자신의 ‘또 다른 유리’를 보았다.

그 유리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기쁨이 아니라… 승리였다.

“고마워, 유리야.

네가 포트를 오른손으로 들지 않았다면,
나는 이 문을 열 수 없었을 거야.”

**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수백 개의 유리.
그중 단 하나, 중심 유리.
그녀의 선택 하나가 모든 문을 열고,

다른 유리들에게 ‘탈출구’를 허용했다.

그중 몇은 자신이 가진 고통을 나눌 자리를 찾았고,
몇은 자신이 버린 연인을 되찾기 위해

중심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를 빼앗으려는 유리와,
그녀를 막아야 하는 유리,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삶 속의 권도현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

“돌아갈 수 없어.”
도현이 말했다.

“하지만… 선택은 네 몫이야.
그녀가 너를 대신해 이 자리를 살게 둘 건지,
아니면— 네가 돌아가 모든 세계의 균열을 닫을 건지.”

유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그녀는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거울은 깨져 있었고, 그 안에 있던 유리는 사라졌다.

주방으로 걸어가며, 유리는 커피포트를 들었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잡았다.

**

그 작은 떨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 손이 향한 방향이 정확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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