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새벽마다 산책을 했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고,
버려진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
가끔은 다시 나타날지도 모를 유리들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 이후,
모든 거울은 단 하나의 모습만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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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평범하게 지내는구나?”
지윤이 물었다.
“응. 이상하게 익숙해.
하루하루가 낯설지 않아.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유리는 미소지었지만,
그 속엔 무언가 잃은 사람의 침묵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모든 유리들은 이제 그녀 안에 살아 있고,
그 중 몇은 아직도 가끔씩, 꿈속에서 말을 건넸다.
『커피는 여전히 쓰네.』
『나는 아직도 도현을 그리워해.』
『넌 앞으로 나아가야 해. 우리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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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낡은 서랍장에서 흰 편지지를 꺼냈다.
오래된 만년필을 꺼내 들고,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 도현아.
너는 모든 세계에서 사라졌지만,
어떤 세계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어.
너를 구하기 위해 수백 개의 내가 일어났고,
또 그만큼의 내가 무너졌어.
나는 네가 만든 문이 아니라,
내가 연 가능성들 속에서 살아가기로 했어.
너는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지만,
나는 이제 그 끝이 되기로 해.
언젠가 다시 너를 만나게 된다면,
그땐 너에게 묻고 싶어.
“만약 우리가 같은 세계에 있었다면,
너는 날 사랑했을까?”
안녕, 도현.
너를 닮은 모든 나비에게.
— 유리
**
그녀는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불을 지폈다.
그 종이는 천천히 타올랐다.
마치 한 생이 끝나는 것처럼.
불빛 속에서, 아주 잠깐—
작은 나비 하나가 날아올랐다.
그것은 유리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
창밖 어둠으로 사라졌다.
**
그리고 유리는 알았다.
이제야 진짜 ‘하나의 삶’이 시작되었음을.
더는 문은 없고, 균열도 없고, 반복도 없었다.
오직—
자신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단 하나의 나비만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