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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하자 Jul 15. 2021

잡생각 없이 그냥 하는 위대함 #8

장염이라서 너무 행복하다.

나는 골프 지도자 자격증을 갖고 있다.

나름 나가던 시절. 골프가 너무 좋아 4번 낙방 끝에 합격했었다.

포천힐스에서 4 오버 기록으로 말이다.


요즘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

아니 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말해서 모든 게 다 무너졌다고 해야 하나? 후후~

꼭 재기를 해서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필드에 서는 날을 꿈 꾸고 있다.


얼마 전 동생이 나를 위로하고자 골프 치자는 연락이 왔다.

오토바이 배달로 양 팔이 시커멓게 탄 내가 무슨 골프인지.

동생이 돈은 다 지불했으니 가자고 했다.

못 이기는 척 이틀 전에 다녀왔다.


결론을 말하면 전반 끝나기 전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골프 약속 전날 늦은 오후부터 오한이 조금씩 느껴졌다.

에어컨 탓인가 하고 무던히 넘기려고 했지만

추위를 느끼는 강도가 점점 높아졌다. 오한이었다.

내일 골프를 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감기약까지 먹고 잤지만 새벽에 내 상태는 더 악화되어 있었다.

복통, 설사, 몸이 쑤시고 아팠다. 열도 났다.


설마 코로나?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열은 떨어졌기 때문에 코로나가 아님을 확신했다.

아니 확신해야만 했다.

나를 위해 일부러 라운딩을 해 주는 동생들 때문이었다.

내 상태를 설명했고 동생들은 일단 골프장 가서 온도를 재자고 했다.

입구에서 온도 측정을 하자 35.8도. 다들 안심했고 나 또한 그러려니 했다.


전반이 끝나갈 무렵부터 몸이 저리고 쑤시고 아프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푸른빛의 잔디의 푹신함은

찾아온 복통과 어지러움으로 싹 사라져 버렸다.


내 상태를 설명하고 결국 전반이 끝나기 전에 골프장을 빠져나왔다.

그 즉시 가장 가까운 코로나 진료소로 향했다.

어제 병원으로 향하던 내 마음을 표현하라고 하면 이 작은 지면으로 감당이 될까?

진료소에서 코와 입 검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울했다. 정말로.



몸이 아팠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빈 속에 비빔 막국수를 먹었다.

이때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속이 아픈데 왜 비빔국수 식당에 간 것일까?

아프다는 걸 정말 정말 아주 잠깐 잊어버렸나?

나는 반도 먹지 못하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입은 국수를 허락했지만 속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밤새 설사를 했고 고열에 시달렸다.

나는 확신했다. 코로나에 걸렸다고.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한 코로나 증상이 계속되었으니까.


***진료소. ***님은 코로나 음성입니다

아침 9시 즈음 문자로 연락이 온 것이다.

로또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흥분한 목소리로 동생에게 전화했고 가족에게도 말했다.

격리되지 않아 좋았고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아 너무 기뻤다.




온몸에 힘이 빠진 채로 내과에 갔다.

식은땀과 복통으로 화장실을 드나들었으니 몸은 만신창이였다.

장염 판정을 받고 결국 링거를 맞았다.













온몸에 힘이 없고 복통과 식은땀이 났지만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진심이었다.

'코로나였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정말 다행이다.'


병원 침대에서 한 숨 자고 일어나 죽 집으로 향했다.

주기적 간격으로 복통이 지속되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왜냐고? 코로나가 아니니까.












태어나 두 번째 장염이지만 녀석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는 너무나 다르다.

오늘만큼은 장염에게 너무너무 고맙다.


나한테 오래 머물지 말고 좀만 있다가 가렴.

장염이라서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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