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빈소에서
장례식장 3층, 복도 끝 빈소 앞. 나는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향을 올렸다. 검은 액자 속 얼굴이 낯익었다. 설명은 반, 장면은 두 배 − 그 문장이 떠오르자, 가슴 한쪽이 덜컥 내려앉았다. 빈소의 공기마저 더 무겁게 느껴졌다. 향 연기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여, 숨조차 깊게 들이마시기 어려웠다. 모든 소리가 희미해지고, 무거운 정적만이 빈소를 채우고 있었다.
조문객들이 자리를 뜨고 나자 빈소는 한순간 고요해졌다. 나는 향로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골랐다. 그때 옆 테이블에서 낮은 목소리들이 흘러왔다.
− 이 교수, 애가 하나 더 있지 않나?
− 응. 자폐라던가. 늘 집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지.
− 그러니까... 늘 어깨가 무거워 보였구먼.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옆 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조용히 들었다. 그제야 교수님이 내 원고 말미에 남겼던 추신이 선명히 떠올랐다. 뒤늦은 이해만이 남았다.
며칠 뒤, 나는 『어깨 위의 집』을 포장해 택배 상자에 넣었다. 수취인란에는 교수님의 주소를 적고, 이교수님 아드님께라고 덧붙였다. 예전에 원고를 보내드리려다 저장해 둔 주소가 문득 떠올랐고, 여러 날 고민 끝에 내 책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표지 안쪽에는 짧은 메모를 남겼다.
− 교수님 덕분에 제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잠시라도 아드님과 가족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길 바랍니다.
펜을 내려놓고도 한참을 상자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메모는 짧았지만, 그 안의 마음은 오래 머물렀다. 작은 상자 하나가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를, 내 글이 이제는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버텨내는 힘이 되기를 바랐다. 그제야 글은 제 자리를 찾아간 듯했다.
며칠 뒤, 구씨는 부의금 봉투들을 정리하다 말고 현관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책 한 권, 『어깨 위의 집』이 들어 있었다.
표지 안쪽의 글씨를 한 번 읽고, 다시 읽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낯선 문장이 이어졌다. 자기 이야기를 비추는 대목마다 그의 손이 멈췄다. 한 장, 두 장. 페이지를 넘길수록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씩 풀렸다. 글 속 집은 허구가 아니었다. 책 속 문장들이 거울이 되어 그의 삶을 비추자, 오래 묻어둔 기억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운동회 날 결승선을 등지던 순간, 회의실에서 동생의 전화를 받고 마이크를 내려놓던 장면이 스쳐 갔다. 그 기억들과 함께, 글 속 집은 더 이상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려놓는 길을 보여주는 집이기도 했다.
구씨는 표지를 다시 쓸어내렸다. 아주 잠시, 그는 어깨에서 집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에게 남은 건 무게가 아니라, 고요히 머무는 온기였다.
다섯 편 가운데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따뜻한 2026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