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음 Aug 08. 2024

도망치기 바쁜 퇴근길

오 그대여 오늘도 고생 많았소.

 피로와 무기력을 들고 집에 들어갈 수 없어 정류장에 내려 카페로 향했다. 써야지. 써내야지. 최초에 글을 썼던 원동력은 '쓸 수밖에 없었음'에 있다. 어디에라도 소리쳐야 해서, 어디에라도 이 형체 없는 울분의 테두리라도 그려놔야 해서 썼다. 목말랐고, 부족했으며, 바닥이 났고, 나뒹굴었다. 그런 감각을 어디에라도 토해내야 했기에 썼다. 나도 모르게 마구 써 내려가고 나면 그 모호했던 통증이 결국 길을 찾아내어 "이곳이다. 이곳이야!" 하고 소리친다. 그러고 나면 조금은 삭히는 마음이 되어 심신을 잠재울 수 있던 것이다.

 지금은 '쓰지 않음'에 나의 게으름을 탓하고 일상의 바쁨을 핑계 삼았다. 어쩌면 설움을 잠재우고 되찾은지도 모르는 안정이 반가울 일이건만. 어느 새인가 '쓰는 것' 자체에 다른 동력을 끌어다 쓰고 있었구나. 한동안 쓰기의 동력을 잊고 지냈다. 


 성장. 성장. 성장. 강박에 가깝게 고취감을 찾았다. 어떻게든 이 감각을 내려둘 곳이 필요했기에 스스로를 확장시키려 발버둥 쳤다. 신문지를 접어 그 위에 서있듯, 겨우 까치발을 들고 서있는 내가 보인다. 그렇게 발 디딜 곳, 숨 쉴 곳 찾느라 글 앞으로 도망쳐 살려달라 외쳤다. 이 영토는 어떻게 넓어질 수 있는 것이며,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부르짖는 마음으로.


 이런 울분을 글로 형체화시켜 놓고 나면 아주 조금은 토지가 넓어진듯한, 내가 그 글만큼은 숨 쉴 구멍을 내어 놓은 듯한 감각에 썼다. 그리하여 쓴 글이 어찌 일상에서 무료함의 광선을 피해 쓴 글과 같을 수 있겠나. 역시 사람은 결핍과 갈망 안에서 타오른다. 그 타오르는 불로 무언가를 가공하고 데우고 녹이며 재료로 삼나 보다. 


 하루를 잘 보내고 났는데 밀려오는 무기력함. 나는 오늘도 당연한 듯 일어났으며 표정 짓지 않고 출근길에 올라, 손에 익은 듯 일을 하고 별생각 없이 밥을 먹었고 다시 숨 쉬듯이 일했으며 그 안에서 충실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감에, 내 모든 걸 어디에 내어주고 어찌 무엇하나 손에 남지 않은 듯한 감각에 휩싸여 나는 껍데기가 되었나. 왜 남은 허물에는 시체에 난 구더기 같은 나쁜 감정이 기어오르는 것일까. 그 감정을 들고 차마 집에 갈 수 없어서 카페에 들렀다.

 그리고 다시 쓰는 것이다. 이 형체 없는 허무를 달래고자. 다시 또 성장을 부르짖으며 더 이상 내가 집에 들고 가야 하는 것이 이런 악취 나는 감정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그러기 위해 발버둥 치는 글이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내가 만들고자 하는 가치를. 선명한 목표는 아니더라도 어떤 목소리를 가진 외침이며, 이 방향이 가리키는 곳이 내가 바라는 곳과 가깝다고.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안의 견딤은 틀림없는 전투다. 어제보다 나아지면, 이전보다 새로우면, 어떤 성취와 행복이 하루에 묻어난다면 이 감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글쎄, 아마 그런 건 없을 듯한데. 다 그렇게 견디고 사는 거지. 견디는 중에 단비라도 내리면, 그 지난함에 말간 빛이라도 들면 그리도 소중할 수가 없는가 보다. 그렇게 다들 그 말랑한 감각을 보듬길 바라며 도망치기 바쁜 저녁이다. 나는 글로 도망쳤고, 누군가는 아늑하게 느껴지는 집으로,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에게로, 누군가는 도망치지 못해 슬픈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가 있다면 부디  이곳이 잠시 도망이었기를. 그대도 나도 모두 도망치며 사니 두려워마시오. 그게 사는 거라오. 오, 그대여 오늘도 참 고생 많았소.


 밤이 늦었다. 빛이 기운 지 한참이 되었고, 저마다 도망치기 바쁘다. 나는 그 길에 내려 오늘의 악취를 내려놓고 글 안에 소리를 몇 차례 내지른다. 사람들이 도망치는 걸 구경한다. 겨우겨우 몸에 잔뜩 묻힌 악취를 카페와 글에 두고 집으로 간다. 


 오늘도 참 고생 많았소.

작가의 이전글 남의 연애. 나의 연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