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요 근래 조금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누군가를 소개받았는데, 그것도 두 명이나! 예의가 없던 것이라고 한다면 쿨하게 인정이다. 한 번에 두 명을 받겠다 한 것은 아니고 각각 다른 이로부터, 어쩌다 보니 시기가 겹쳤다. 그렇다고 하루에 두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니고 마음을 준 것도 아니어서 영 대수롭지 않았달까. 오랜만의 소개 자리에 조금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 번 본 것으로는 참 알 수가 없더라. 싫지만은 않아 자연스레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 번씩 만났고 두 사람 모두 좋은 사람인 듯했지만, 나에게 좋은 사람이란 느낌이 들지 않아 그만두었다. 아마 그들도 느꼈기에 다음이 없는 사이가 된 거겠지. 서로에게 좋은 관계란 어떤 관계인 걸까. 20대의 연애는 작은 호기심과 매력만으로도 시작되곤 했다. 두 분 모두 매력적인 분들이었으나 이제는 사소한 모습에서도 잠깐씩 이후를 그려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연애라는 것이 나에게 무엇인지, 어떤 관계를 원하고 바라는지 알게 된 30대는 내 연애의 조각틀에 그 사람을 대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 꼭 맞는 사람을 찾을 것이란 맹랑한 기대는 차치하여도 최소한 나의 틀이 찢기고 부서질 관계는 조심히 지나갈 수 있도록 두는 것. 이것이 30대의 연애인지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는, 맞추는 품이 덜 드는 사람과의 연애를 꿈꾸면서도 그 안에 차곡차곡 사랑이 담길 수 있길 꿈꾸는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연애는 참 쉽지 않다.
친한 언니에게 이런 일화를 들려주고 재미있다며 (역시 다른 사람의 연애 얘기만큼 재미있는 건 없나 보다.) 손과 입을 모으며 옴짝달싹 짝짜꿍 흥이 나는 수다를 이어갔다. 며칠 후 후기를 묻기에 신이 났던 박자에 뚝 끊기는 시큰둥한 결말을 전했다. 사람을 대하는 데이터가 예리한 만큼 잘 거르고 있다고 생각하자는 언니의 말에, 아. 나 참 언니란 사람 곁에 잘 두었다. 했다.
앞으로는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나 한숨이 겹치지만, 두 사람을 지나가도록 두면서 어떤 중심이 나에게 있음을 느꼈다. 과거의 연애에서는 중심이 한쪽으로 쏠렸다.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에게 집중하고, 두 사람의 시간과 충실함으로 '연애' 그 자체가 모든 중심이 된 듯했다. 그 또한 사랑이고 이후 하게 될 연애에도 필요한 감각이겠지만 나와 당신, 그 가운데 우리. 균형을 잘 맞출 수 있고 서로의 조각이 다치지 않고 잘 맞물릴 수 있는 관계라면 참 좋겠다. 이렇듯 말은 쉽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듯한 답만 남았다.
나는 항상 균형 잡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며 산다. 그럼에도 그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바이다. 내가 언젠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김현재 씨와 이미래 씨가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항상 알게 모르게 서로 닿아있으면서, 서로를 생각했으면 해서. 과거는 없다. 둘이 함께하는 순간순간이 과거일 테니. 그저 함께 바라보며 나아가고 살아갈 뿐.
김현재 씨는 인사 총무팀에서 일한다. 깔끔한 인상과 일처리로 동료들에게 신뢰감이 두텁다. 다만, 냉철한 구석이 있어 정이 없다는 소릴 듣곤 한다. 현재씨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이미지로 기억하곤 한다. 현재씨가 보는 미래씨는 덤벙거리는 오리 같다. 걸음걸이에서 살짝 연상된 듯한데, 그녀의 책상에 놓인 러버덕 연필꽂이를 보고 그대로 저장되었다. 아이보리색 옷을 자주 입고 다니는 탓에 현재씨에게 미래씨는 연노란 오리 이미지이다.
이미래 씨는 일처리가 느린 편이다. 정시 퇴근을 해본 날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다. 빨라도 30분 정도는 꼭 넘겨 퇴근하곤 해서, 회사에는 '미래 퇴근시간'이란 비공식 퇴근 시간이 생겨났다. 미래씨는 고민 상담에 능했다. 쉬는 시간에 탕비실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면 금세 화기애애 대화하다가 그 주의 점심약속을 잡기 일쑤였다. 그런 미래씨에게도 현재씨는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주말에 뭐 하셨나요? 하고 물으면 안경을 한번 추켜세우고 딱 두 단어가 돌아왔다. '딱히..' 미래씨에게 현재씨는 일만 하는 딱따구리 같다.
자, 언젠가 만나봅시다. 현재씨와 미래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