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쓸 수밖에 없어서였다. 뭐라도 쓰지 않고는, 뱉어내지 않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렇게라도 글에다 소리쳐야 흐려진 눈을 비벼 세상을 보고 말을 씻고 호흡을 이리저리 주물러 겨우 걷고 자고 먹고, 일상에 허리를 펴고 앉아 하루를 살 수 있었다. 딱히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괜찮아지기 위해 썼다.
과거에 듣고 싶던 말들을 글로 써 쓰고 다시 읽기를 반복하면, 나는 그 말을 들은 사람인가. 말한 사람인가. 결국 내가 쓴 말들이 나를 살렸다면, 너도, 당신도, 누군가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어딘가에서는 그런 말을 듣지 못해 뛰어내리고 무너지고 중력을 잃고 멈추지 못하는 일상에 산다. 참 신기한 것은 내가 살면, 당신도 산다. 내가 행복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15% 높여준다고 한다. 또 그와 연결된 사람들이 행복해질 가능성이 약 10% 증가한다. 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행복은 6% 증가하고, 네 단계쯤 지나면 그때서야 영향력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와 같은 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겠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지는 해가 냉큼 올라탔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 뒤로 마저 승차하지 못한 해가 손을 뻗어 달리는 열차를 잡으려 했다. 그 순간이 아름다워 사진으로 남기고팠는데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대신 글로 담았다. 귀에 꽂은 이어폰의 노래가 더욱 감미롭게 들리고 옆에 앉은 수녀님께는 마리아가 자장가를 부르고 있는 중인지 조용하고 곤한 얼굴이시다. 부디 이 평화를 오래도록 허락하소서. 언제나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빛을 내뿜을 때면 그 순간을 사랑했다. 빛으로 감싸 안은 듯, 모두에게 내려앉아 하루를 고요히 안는 그 빛을 볼 때면 저렇게 되자고. 어디든 따스하게 물들여보자고. 어디든지 그리고 어딘가에 존재하는 빛처럼 살자고 꿀꺽 다짐을 삼킨다. 아름다운 순간을 붙잡아 두기 위해 썼다.
생각이 맴도는데 결말로 이어지지 않을 때에도 썼다. 이전에 느낀 듯한, 아직 느끼지 못한 듯한 감각을 쓰다 보면 어렴풋해지거나 그대로 흘려보내기 위해 썼다. 그럴 때면 차곡히 무언가 채워진 기분 혹은 비워낸 기분이 되었다. 고이 종이를 접어둔 듯, 음식을 꼭꼭 씹어 삼킨 듯 정리가 되는 기분. 그렇게 모이고 쌓이면 치열하게 고민한 내가 과거에서 등을 받치고 있었다. 그렇게 일어나고 그렇게 나아갈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렇게나 멋진 일이다.
여전히 나를 위해 쓰고, 당신을 위해 쓴다. 당신이 잘되는 것이, 누군가가 괜찮아지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라고 여긴다. 내가 더 행복을 위해 나아가면 당신도 한 발 나아갈 것이라, 미루지 말고 행복해야겠다. 오늘은 우연치 않게도 하루에 감사 인사를 많이도 주고받았다. 누군가의 합격 소식부터, 어떤 이의 또 다른 합격 소식, 주변의 추천을 받고 찾아와 다시 감사를 나누어준 이와 고마웠던 이로부터의 안부 문자까지. 당신이 행복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더하고 되묻고. 덕분에 마음이 한껏 배부르고 따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와 같다면 나로 하여금 순환하게 하소서. 그렇게 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