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글을 쓰러 가야겠다는 포부 아래 노트북을 들고 출퇴근을 했다. 그런데 그냥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는 직장인이 되었을 뿐이다. 관성적인 일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요즘의 나는 변화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변화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음에 신물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쪽을 향해 자꾸 두드려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만큼의 행동과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음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 3중 부정을 쓴 만큼 아무튼 정말 답답하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알아가기를 즐기는데, 누군가에게 어쩜 그렇게 부지런하게 성취해 나갈 수 있느냐 비결을 물었더니 '장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은 합기도를 즐기는데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자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호기롭게 몇 개월 후에 있는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해두었더랬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이미 신청을 해두었고 포기하기엔 아까우니 그래도 하게 되더라'하는 자신이 남았다고 했다. 좋은 성적까지는 아니어도 스스로 만족했고, 또 나가볼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내 친구는 나와 같이 매년 다이어트 결심을 다지고는 사이좋게 맛난 음식과 술을 나누었다. 각자의 일상에서도 잘 살아남기 위해 결심은 역시나 뒷전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바디 프로필을 예약했다며 선언했다. 심지어 꽤나 단기 일정이었다. 어, 정말? 괜찮겠어? 이제와 솔직히 말하면 괜한 낭비이지 않을까 우려했다. 과연, '장치'의 힘인 것일까. 그 친구는 내가 알던 이래로 가장 날씬한 몸을 선보였고 현재까지도 유지 중이다.
필명이 마음이듯, 나는 대부분의 것을 결심과 의지, 마음먹기와 마음가짐 등의 영역으로 밀어버렸다. 그 또한 일정 부분을 차지하지만 마음만으로 변화를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다. '장치'가 필요하다. 나는 그를 조금씩 설정해가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글쓰기 모임을 통해 마감기한을 두는 방식을 차용했다. 지금은 기간이 끝나 자발적인 생태 조성이 필요한 시점인데, 이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가벼운 글쓰기뿐이라 발행하지는 못하는 일기 같은 글들이 천천히 쌓여가고 있다.
변화를 위해 필요한 작업들의 기한을 정해둘 것. 하기 싫더라도 쉬이 발 뺄 수 없는 '장치'를 마련해 둘 것.
오늘의 반성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