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왈츠

by 윤음

봄이 나를 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봄을 열게 되기를.


분명 엊그제까지만 해도 뒷골이 당기는 추위가 애워쌌는데 꽃이 피었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뭐든 신중함을 기하며 선택을 미루는 성향 탓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먼저 찾아오곤 했다. 나는 어쩜 이리 느린 사람인가 한탄하며 또 계절이 바뀌었다. 이것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는데 여실히 찾아온 따뜻한 햇빛의 인사에 떨떠름하면서도 안심이 된다.


이직을 했다. 대략 생각해 둔 시기에 맞춰 준비했지만 면접을 보러 다니고 발표를 기다리고 인수인계를 대비하는 동안 폭풍을 만난 듯했다. 거센 풍랑이었다. 재직 기간 조율과 채용 확정 전 기다림, 와중에도 정신없이 진행되는 업무, 그리고 관계의 파열음. 재직 중 이직이 이토록 골치 아픈 것임을 알았더라면 감히 엄두 내지 못했을 것이다.

확정되지 않은 상태란 사람을 어찌 이리 휘두르고 궁지에 모는가. 중심을 딱 잡고 서있어도 턱없이 모자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에 탄복했다. 겨우 할 수 있는 건 이런 자신을 한심하게 보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고작이었지만 애써 얻은 것이라, 이마저 소중히 다루어야 함을 꽤 오랫동안 스스로를 미워하며 배웠다. 더 이상 떠밀려 행하지 않는다. 선택을 먼저 손들어 주장하지 않을 뿐, 나름의 답을 가지고 기다린다. 그리고 때가 오면 겸허히 받아들이는 이가 곧 나임을 이제 겨우 알았다. 이를 되새기며 그 시간을 견뎠다. 마무리가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았지만 시간이 늘 그러하듯 흘려보내고,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는 중이다. 폭풍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변화의 바람은 휘몰아친다.


어떤 움직임이든 자국이 남을진대 깔끔하게 존재를 지우고 새로운 곳에 멀끔히 존재하는 자체가 가히 욕심이었다. 앉았던 자리에 온기가 남고 오래 머물렀던 자리에는 사용감이 생긴다. 변화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기 위해 때때로 나의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데 마음은 바라면서 주위는 그대로 있어 달라 소리치는 격이었다.

변화에 발맞춰 불안과 혼돈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춤의 도중이었다. 열심히 스핀 하는 것이 무대를 더 풍성하게 하는 요소이니, 그 어지러움에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의식을 잡기 위해 애썼다. 동작의 끝이 보일 때 멋지게 중심 잡고 서서 하나의 극을 멋지게 피날레 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하여 얻은 변화이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이 잔존한다. 생물이기에 필요한 적응기에 아직도 변화가 끝나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질문이 날아든다.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나는 무엇에 저항하며 이곳에 있는가. 그 답을 찾아 더듬더듬, 휘청휘청, 흐릿흐릿.


그러다가 오늘은 신기한 말을 들었다. 도착지가 있다면, 기착지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산에 오르는 중에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코스를 택했더라도 결국 모두 정상을 향해 가듯이. 오히려 가파를수록 빠르게 오를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나는 어떤 도착지를, 어떤 무대를 그리고 있었나. 자신에 대한 질문은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존재의 안녕을 위해서는 '좋은 질문'이 필요하다. 그 질문에 멈춰있지 않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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