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만난 장애인 그네 이야기
뉴질랜드에 삶의 터전을 잡은 지 3년이 다 되어 간다. 나고 자란 곳이 아닌지라 여즉 하루에도 몇 번 씩 생소함을 느낀다. 지난 연말 남섬 여행길도 그러했다.
크라이스트처치였던가. 그 날 일정을 얼추 마치고 숙소로 향하던 길에 놀이터 하나를 만났다. 참새같은 우리 딸에겐 방앗간이 따로 없었다. 딸은 시소와 미끄럼틀을 바삐 오가며 놀았다. 내 시선이 아이를 지나 그 옆 그네로 닿았다. 아주 큰 그네 하나가 눈끝에 걸렸다. 놀이공원에서 봤던 어린이용 바이킹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앞으로 향했다.
내 예상은 틀렸다. 이 그네는 바이킹이 아니라 휠체어 그네였다. 생경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그네를 타는 장면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네 뿐일까. 마트, 거리, 영화관, 도서관. 내가 누리는 그 모든 것의 풍경에서 그랬다. 당황한 내가 그네도 참 당황스러웠을 터. 그네가 날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누구든 삶을 누릴 자격이 있지 않소.
내 말이 틀렸는가."
아이는 태어나 집 다음으로 놀이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 커다란 그네를 보며 자란 아이들에겐 이게 당연한 풍경이 된다. 누구든 삶을 누릴 자격이 있는 풍경.
여행에서 돌아와 아이는 이 곳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을 둘러본 첫날, 소파에 혼자 앉아 멍하게 있는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또래 아이와는 뭔가 다른 모습이었다. 내 눈길을 눈치챈 선생님이 아이를 소개했다. 자폐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아이는 모두 그러하듯 어린이집에서 논다. 그 아이를 대하는 다른 아이들도, 선생님도 그저 자연스러웠다. 그 풍경을 어색하다 느낀 건 오로지 나 하나였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의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다 눈을 부볐다. 뭔가 잘못 봤나 싶었던 거다. 짧은 민소매 탱크탑을 입은 아가씨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차 앞을 지나갔다. 훤히 드러난 그녀의 왼쪽 팔꿈치 아래가 텅 비어 있었다. 눈을 몇 번 더 깜빡이고 나서야 잘못 본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아가씨는 잘린 팔을 숨기지 않았다. 모두가 그러하듯 더운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그 누구도 수근거리지 않았다. 서둘러 시선을 거두며 몹시 부끄러웠다.
그들의 장애가 어찌 아프고 힘겹지 않았을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릴 수 있는 삶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굳이 '장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장애' 대신 '가난', '실패',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는 그 어떤 단어를 대입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회에선 '장애', '가난', '실패'라 쓰고 '끝'이라 읽는단 걸 안다. 하지만 이 곳에선 그걸 '끝'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읽는다.
장애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게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큰 실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에겐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