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41
남편은 이 곳, 뉴질랜드 회사에 다닌다.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재밌는 일을 들려주곤 하는데, 꼭 <먼나라 이웃나라> 읽는 것마냥 재미나다. 이 에피소드가 특히 그랬다.
그 날, 오후 3시에 남편에겐 중요한 회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사장님도 참석하는 회의였다. 그런데 한 2시 쯤 사장님에게 단체 메일이 왔다. (이메일을 통해 일정을 잡고, 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다.)
"저기, 내가 일이 생겨서 그런데 4시로 미루는게 어때?"
남편이 그 메일을 다 읽기도 전에 한 통의 회신이 날아들었다.
"조, (사장님 이름이 '조'다.) 이렇게 갑자기 일정을 바꾸면 곤란해. 나 4시에 애 픽업하러 가야 하거든."
다시 남편이 그 메일을 읽기도 전에 조가 회신했다.
"앗, 그래? 쏘리. 그럼 3시에 봐."
연애와 결혼을 합쳐 거의 10년을 함께 했건만, 이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조가 그 사람 짤랐어? 슈퍼바이저한테 불려갔어?"
"아니? 그냥 3시에 회의 했는데?"
이 곳에서도 사장님은 힘이 세다. 그의 의사 결정에 수 천 명의 직원이 움직인다. 대개 연간 단위로 계약이 연장되는 터라 윗사람에게 미운털 박히는 건 치명적이다. 심지어 '애'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이유로 일개 직원이 사장님에게 그런 어필을 하다니. 지극히 전형적인 한국인인 나의 사고회로에선 자꾸 에러 메시지가 떴다. 더 놀라운 건 회의에 참석한 그 누구도 이 커뮤니케이션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
"사실 그 사람 말이 틀린게 아닌게 우리 회사는 한국처럼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니잖아. 하루 중 언제가 됐든 자기가 계약한 시간만 채우면 되는 구조니까. 일하다가 애 데리러 가도, 거기에 드는 시간은 빼고 급여 받고. (자기가 일한 시간만큼 주 단위로 급여를 신청하는 구조다.) 그 사람은 떳떳한 거지. 약속을 어긴 건 한 시간 전에 회의 시간 바꾸자고 한 사장님이고."
이 에피소드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옆 부서 슈퍼바이저 회사 그만둔대."
(이 회사에서 슈퍼바이저면 굉장히 높은 직급이다. 한국으로 치면 임원급)
"어? 왜? 짤렸어?"
"아니. 애 키워야 한대. 와이프가 배우였는데 그동안 애 키우느라 잠시 접고 있었나봐. 그래서 이젠 자기가 바톤터치해서 애랑 있을 거래."
"대박... 와이프가 엄청 유명한 배운가봐."
"그런 건 아닌듯. 그냥 배우 지망생 정도?"
"어? (3초 간 멘붕) 그런데 슈퍼 바이저까지 한 사람이 배우 지망생 와이프 밀어준다고 일을 그만둬? 휴직도 아니고?"
"생소하지. 나도 좀 그랬는데 사람들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 안하더라고. 그 부서 사람들은 십시일반 푼돈 모아서 주던데? 이제 저 사람 돈 못 버니까 비상금 좀 모아주자고. 그거 주고 맥주 마시다가 빠이빠이 하더라고."
이 에피소드는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된 거다. 남편이 일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 3명이 비슷한 시기에 아빠가 됐다. 그리고 세 분 모두 한 달 간 휴직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생소한 건 아빠의 휴직이 자연스러운 문화만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회사는 '시급제'다. 일한 만큼 돈을 받는다. 한 달을 쉰다는 건 상당히 큰 경제적 손실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은 쉬었다. 아이를 돌볼 와이프도, 곁에서 도와줄 지인도 있었지만 갓 태어난 아이와 보낼 한 달을 선택한 거다. 철저히 가족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곳 문화의 영향일거라 생각했다.
한국의 1인당 출산율은 1.25명으로 224개 나라 중 219번째로 높다. 다시 말해 뒤에서 여섯 번째다. 뉴질랜드는 1명이 1.92명. 한국보다 53%가 높다. 굳이 숫자로 말할 필요도 없다. 전세계적으로 갓난 아기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있다지만, 아직 뉴질랜드 놀이터엔 혼자 놀러오는 어린이가 드물다.
오해는 마시길. '뉴질랜드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지상낙원이에요. 무조건 오세요!' 할 생각은 없다.
한국에서 아이를 가지면 나라에서 바우처를 준다. (50만원 상당) 아이가 태어나면 세액공제도 받는다. (첫째 30만원, 둘째 50만원, 셋째 70만원) 지자체에 따라 출산장려금을 주는 곳도 있다. 아이가 만 5살이 되기까지 집에서 양육한다면 780만원을 준다. 어린이집은 전액 무료다.
반면 뉴질랜드 정부는 좀 박하다. 어린이집 비용은 만 3살이 되기까지는 일절 지원이 없다. 주 5일 보낸다고 했을 때 한 달에 거의 100만원이 든다. 만 3살이 된다 해도 전액지원은 아니다. 아이는 만 5살 때 학교에 가게 되는데, 그것도 3시면 마친다. 맞벌이 가정이라 좀 더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또 수십 만원짜리 프로그램에 등록해야 한다. 12살이 되기 전까지 모든 병원비, 약값이 공짜긴 하지만 종합적으로 봤을 때 경제적 지원이 한국만 못하다. 맞벌이 가정의 육아가 상당히 비싼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는 둘째, 셋째를 고민하게 되는 나라다. 대체, 왜?
굳이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일과 가정이 조화를 이루게끔 배려하는 문화'가 아닐지.
사장님에게 일하다 애 데리러 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다. 애 돌보려 아빠가 퇴사하는 걸 누구도 구설에 올리지 않는다. 한 달 월급 안 받고라도 태어난 아이와 함께 하는 게 자연스러운 곳이다. 금요일 저녁 비어타임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직원들도 여럿이다.
일하는 엄마에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워킹맘들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죄책감을 갖게 하는 주위의 시선'이다. 복직을 앞둔 엄마가 젖먹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동네 할머니들, 친척들, 조리원 동기들까지 수근거린다. "저 어린 걸 ...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벌써 어린이집에 보내." 적어도 세 살까진 엄마가 끼고 있어야 한다며 알지도 못하는 집 아기를 가엾어하고 그 집 엄마를 탓한다. 일하고 싶거나, 일해야 했을 뿐인 엄마는 순식간에 죄인이 된다. 이래놓고 일과 가정의 조화가 가당키나 할까.
매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며 다른 아이의 부모들과 자주 마주친다. 그 중엔 젖먹이들도 적지 않다. 그 아이들을 선생님의 품에 건네는 엄마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아이와 '빠이빠이'했다.
한국의 숱한 엄마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저 미소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