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Aug 22. 2016

기자님. 워킹맘의 비애라 말하지 마세요.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42

우리는 안다. 말이 생각을 만든단 걸.


'과거사'라는 말은 틀리다. 그 일들의 발생 시점은 과거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아직 고통받는 이가 있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 분명 현재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과거사'란 말에 속아버린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사 타령 그만합시다. 다 지난 일 가지고...'


'칼퇴근'이란 말도 틀린다. 누구도 '칼출근'이라 말하지 않는다. 제 시간에 출근하는 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칼퇴근'은 제 시간에 퇴근하는 게 당연하지 않지 않단 거다. 그런 생각이 그런 말을 만들었고, 그 말이 그 생각을 굳혀버린 거다. 


같은 맥락이다. 기자님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내는 '워킹맘' 시리즈들이 마뜩찮은 건. 



보육대란 앞에 모두가 '워킹맘'을 걱정했다.


올해만큼 애 있는 집이 시끄러웠던 때가 또 있을까. 누리과정 예산 문제로 일명 <보육대란> 논란이 불거졌다. 포탈 사이트 메인엔 하루가 멀다하고 워킹맘들의 비애와 분노를 다룬 기사가 걸렸다. 친구 워킹맘들의 카톡방에서 고민과 버무러져 오간 것도 바로 이 기사들이다. 


'보육대란에 워킹맘 비상'

'워킹맘.. 여전히 불안..'

'때마다 괴로운 워킹맘'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엄마 동지들끼리 서로를 위로했다. 흔히 그러하듯 마무리는 부러움 섞인 한탄이다. 


"그래도 니네 남편은 잘 도와주잖아. 우리 남편은 맨날 폰만 보고 있어."


가뜩이나 예민해진 귀에 한 단어가 자꾸 걸렸다. '도와주잖아'. 남편이 육아를 '도와준다'는 말이 맞는걸까. 



워킹맘의 고민이 아니라,

맞벌이 부부의 고민이다. 


안다. 현실이다. 엄마는 육아 최전선 부대다. 하지만 그 부대원은 엄마 혼자가 아니다. 보육대란 앞에, 육아문제 앞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고 '돌진!'을 외쳐야 하는 '아빠'가 있다. 일 갔다 오면 그냥 애들이 쑥쑥 커 있었던 우리 부모님 세대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안사람과 바깥사람의 구분이 예전과 같지 않다. 육아도, 가사도 '함께' 하는 시대다. 하지만 걸림돌은 차고 넘친다. 


"애비는 피곤할텐데 들어가 쉬어라."  

(애는 엄마가 봐야지.)

feat. 시어머니


"왜 아버님이 픽업오세요? 

어머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애는 원래 엄마가 챙기는건데.)

feat. 어린이집 선생님


그리고 하나 더.

"보육대란 땜시 워킹맘들 힘들대요."

(육아는 엄마 몫이니까.)

feat. 기자님들



안다. 악의는 없다. 그냥 말하던 대로 말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바뀐 세상 속에 바뀌지 않은 단어는 때로 현재의 머리채를 잡아 과거로 회귀하게 한다. 특히 수만, 수십만 명의 머릿속에 '말'로 집을 짓는 기사들은 힘이 세다. 부부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를 한 쪽으로 모는 단어라면 한 번 더 생각하고 써야 한다. 


워킹맘이 힘들고, 워킹맘이 이렇게 고생한다고 말하는 건 별반 도움이 안된다. 정말 도움이 되고 싶으면 단어 하나만 바꿔 쓰면 된다. 


"워킹, 보육대란 앞에 깊은 시름..."

"워킹부부, 보육대란 앞에 깊은 시름..."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저 글자 하나 추가해서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래서 아빠들이 '저건 엄마들 이야기네' 하고 넘겨 읽지 않고 '우리 부부 이야기네. 방법을 생각해봐야겠군.' 하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겠다.


아이에겐 아빠가 있는 삶을,

엄마에겐 동지가 있는 삶을,

아빠에겐 가족이 있는 삶을.


모두에게 좋은 일.

매거진의 이전글 Re: 사장님. 우리 애 픽업하러 가야 하는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