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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Sep 02. 2016

엄마는 놀지 않습니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45

"난 집에서 노니까 ..."


어젯 밤, 난 아들 둘 키우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한창 말썽부릴 나이인 첫째 아들이 오늘 벌인 만행(!)을 털어놓았다. 그녀가 아끼는 물건을 망가뜨렸다며 속상해했다. 얼마나 좋아하던 물건인지 알기에 대뜸 얼른 다시 사라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 싶은데... 난 돈도 안 버는데 ..." 


한참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말끝을 흐린 그녀에게 조금 화가 났던 모양이다. 하루 종일 두 아이 건사하느라 그 고생을 하면서도 스스로 주눅들어 있는 그녀가 속상했다. '돈도 안 버는데' 다음에 달린 말줄임표 3개조차 주눅들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저 말은 그녀만 한 게 아니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많은 아이엄마들의 레퍼토리였다. 그녀들은 파김치가 되서 겨우 소파에 누군 한밤 중에도 이렇게 카톡을 한다.


"난 집에서 노니까, 난 일 안하니까."



엄마는 놀지 않는다.


노동의 사전정의는 이러하다. 



육아도 노동이다. '엄마가 행복,생활을 위하여 아기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행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세상에 노는 엄마는 없다. '집'에서 아기를 대상으로 일할 뿐이다. 엄마들의 노동환경은 하물며 열악하기까지 하다. 


- 휴일 없음

- 정시 퇴근 없음

- 근거리 3초 대기 요망


엄마는 억만금을 준대도 꺼려할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24/7 오버타임 근로자다. 



숫자는 정말 힘이 세다. 


문제는 숫자다. 엄마 노동자에겐 월급 통장이 없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수고는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다. 아니, 평가되지 않는다. 


귀찮지만 계산을 해보자. 


한국에서 지인이 평일 9시간 씩 아이를 맡기고 월 200만원을 드린다. 시간당 1만원 남짓이다. (뉴질랜드에서 아이를 봐주는 내니의 시급은 보통 25불에서 30불 사이다. 한국돈으로 치면 2.2만원인 셈) 한국을 기준으로 한 번 '노동자'로서 엄마의 월급을 계산해보자. 


하루에 10시간을 자는 돌쟁이를 독박육아한다고 치자. 아기가 깨어 있는 14시간이 엄마 근로자의 근무 시간이다. 주말이라고 아이가 잠만 자진 않는다. 엄마 근로자는 주 7일 일한다. 평일 퇴근이 늦은 한국적 현실을 감안, 아빠 근로자의 육아 참여를 주말 50%로 계산해보자. 엄마 근로자의 주당 근무 시간은 84시간이다. 변수는 하나 더 있다. 아기가 잠들어 있는 10시간동안 엄마 근로자는 '잔업'을 해야 한다. 하루에 2시간이라 치자. 주당 근무 시간은 96시간으로 늘어난다. 시급을 (짜게 잡아) 1만원이라 했을 때 한달, 엄마 근로자의 통장엔 425만원이 찍힌다. 


425만원이다. 연봉 5천이 넘는다. 휴일과 퇴근, 휴가없이 근거리 3초 대기하는 '바깥' 직장 월급에 비해 많이 짠 감이 없지 않지만 여튼 그렇다. 결코 '값 없는' 노동이 아니란 뜻이다. 



논다고 말하지 마세요. 안 놀잖아요.


사실 이 말은 외벌이 남편, 혹은 그 남편의 어머니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집에서 아이를 보는 노동을 성실히 수행 중인 엄마,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스스로 당당했으면 좋겠다. 진짜 은행 통장을 만들어 남편 월급 통장에서 자동이체를 신청하란 게 아니라, 머릿속에 그 숫자만큼 큰 수고로 인식하잔 거다.

 

"난 돈도 안 버는데..." 하며 집었던 구두를 내려놓지 맙시다.

"난 집에서 노니까..." 하며 남편에게만 주말 늦잠을 허하지 맙시다. 


찍히지 않을 뿐 돈 버는 거에요.

수고가 보이지 않을 뿐 안 놀잖아요.

나도 알아주지 않는 내 수고를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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