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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Oct 24. 2016

오후4시면 카페문을 닫는 이상한 나라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46

난 내가 사는 동네를 사랑한다. 


지척에 바다가 있다. 파도 좋은 날이면 검은 웻수트를 입은 서퍼들이 개미떼처럼 바다 위에 넘실댄다. 파도를 타며 인생을 즐기는 그네들을 보고 있자면 (물에 뜨지도 못하는 맥주병인 주제에) 내 가슴도 덩달아 뛴다. 


공항이 지척이라 내 집 앞마당에서 하늘을 드나드는 비행기를 볼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다. 떠나는 이들은 설렐테고 돌아오는 이들은 푸근하겄지. 비행기의 궤적과 함께 내 지난 여행을 곱씹게된다. 



하지만 내가 뉴질랜드라는 나라, 라이얼베이라는 이 동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다도, 서퍼도, 비행기도 아니다. 이 곳에 잔디마냥 자연스럽게 깔려 있는 '아이가 있는 풍경'이다. 


바다를 끼고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놀이터다. 


아이들이 신나게 미끄럼틀과 시소를 오가는 사이 부모들은 그 옆 벤치에 앉아 소소한 일상을 나눈다. 바다와 아이가 어우러진 풍경만큼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게 있을까.



벤치에 앉은 부모들의 손엔 대개 근처 카페에서 사 온 커피가 들려 있는데, 사실 이 곳에 살면서 가장 놀라웠던게 바로 카페 문화였다. 


1.아이를 위한, 엄마를 위한 카페다.


햇살 좋은 날이면 동네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수유하는 엄마를 쉽게 볼 수 있다. 아이는 따뜻한 엄마의 품을, 엄마는 따뜻한 햇살을 즐긴다. 그 누구도 이 광경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 옆에 앉은 또 다른 아이의 앞엔 작은 커피잔이 놓인다. 일명 Fluffy. 따뜻하고 탐스러운 우유 거품과 마시멜로우 2개가 세트로 나온다. 완전한 아이몫의 메뉴다. 어떤 카페에선 무료로 제공하기도 하고, 가게에 따라 1-2달러를 받는다. 


이 나라에 노키즈존이란 건 없다.



2. '동네 카페'가 주인공이다.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엔 스타벅스가 딱 2개다. (원래 3개였는데 한 곳이 얼마 전 문을 닫았다.) mojo란 체인도 있지만 우리나라 별다방 콩다방 마냥 즐비하지 않다. 인구 대비 카페의 수가 무려 뉴욕보다 많은 카페의 도시이건만, 그 주인공은 동네 카페다. 규모는 작지만 인테리어와 커피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골라 가는 재미가 있을 수 밖에.


3. 커피가 싸다.


뉴질랜드의 물가는 한국보다 비싸다. 거의 모든 품목에서 그러하지만 몇 가지 예외는 있다. 소고기와 키위, 우유, 치즈 그리고 커피.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아메리카노가 3.5달러 (2,800원), 라떼가 4달러 (3,200원) 수준이다. 5천원 6천원은 쉽게 넘어버리는 한국 카페를 생각하면 고마울 따름. 



4. 당신이 생각하는 그 아이스 커피는 없다.


스타벅스나 모조같은 체인 카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동네 카페엔 (당신이 생각하는) 아이스 커피가 없다. 달그닥 달그닥 소리만으로 내 마음을 시원하게 했던 그 아이스 라떼, 아이스 아메리카노 말이다. 메뉴판에 있는 '아이스 커피'를 보고 반가워 득달같이 주문했다간 당황하게 될 거라 장담한다. 아이스크림이 얹어진 커피를 받게 될 것이므로. 




5. 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다.


위치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카페가 문을 닫는 시간이 실로 놀랍다. 우리 동네의 근사한 카페 elements는 정확히 4시에 문을 닫는다. 새벽 4시가 아니다. 오후 4시다. 24시간 편의점과 카페에 의존해 살아온 나로서는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헐레벌떡 뛰어가 라떼를 주문한 3시 57분, 커피를 내밀며 씩 웃는 카페 직원의 웃음을 보고 있자니 이 '4시의 힘'을 느낀다. 무엇이 이 '4시'를 있게 했을까.


첫째. 사장님은 직원들의 저녁을 담보로 해서까지 돈을 벌 생각이 없다. 

둘째. 직원들은 하루 열 몇 시간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셋째. 손님들은 굳이 늦은 오후나 밤에 카페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저녁은 가족과 함께.



@elements 홈페이지



언제까지 이 곳에 살게 될 진 모르겠다. 


다만 저 바다를 건너 저 비행기를 타고 떠나게 되는 그 순간 떠오를 한 장면은- 아마도 아이와 저녁이 있었던 그 풍경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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