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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Oct 31. 2016

순실스런 엄마가 유라같은 딸을 만든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47

어딜가도 순실, 순실.

이런 난리가 또 있었을까. 


열기가 뜨겁기로는 2002년 월드컵과 흡사한데, 그 열기가 환희가 아닌 분노로 타오르고 있다. 포털앱은 하루가 멀다하고 속보를 낸다. 그녀가 잘못한 것이 대체 몇 가지인지 이젠 헤아릴 기운도 없다. 세월호와 함께 이미 가라앉았다 생각했던 우리네 희망이 더 내려갈 곳이 있었다. 이젠 정말 바닥이다.


그녀는 대체 몇 명의 일상을 망쳐놓은걸까. 하지만 순실 씨가 가장 절대적으로 망가뜨린 건 우리네 일상이 아니다. 딸, 유라 씨의 일생이다. 



숱한 어록 중 기억에 남는 한 줄,

"니네 부모를 원망해."


유라 씨는 처음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그녀를 향한 특혜 의혹은 오늘날 여론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 중 많은 이들에 박힌 건 그녀가 SNS에 올렸던 한 줄일게다. 



"돈도 실력. 능력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여러 생각을 했다. 



감사했다.

낡은 신발로도 예뻤던 우리 엄마.

백원도 공돈 안 바랐던 우리 아빠.


우리 엄마의 신발장엔 프라다는 커녕 이름없는 로고마저 닳아 없어진 구두 서너 켤레가 전부였다. 지금도 좋은 옷, 좋은 신발 사드릴라치면 그거 신고 어디 갈 데도 없다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엄마는 정말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여름날. 학부모 참관 수업에 엄마가 오셨었다. 모시 원피스를 입고 갈색 허리띠를 한 엄마는 참 예뻤다. 그 모습이 유독 선명한 건, 내가 다닌 학교에 엄마가 오셨던 기억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숱하게 반장 임명장을 들고 가도 학교 한 번 오지 않았던 엄마에게 서운했다. 하지만 순실 씨를 보며 알았다. 난 참 멋진 엄마를 가졌다. 


아빠는 삼십 년을 넘게 한 직장에서 나랏밥을 먹으셨지만 그 밥을 한 번도 허투로 드시지 않았다. 문득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스물 한 두 살, 지금 유라 씨와 비슷할 때였다. 당시 아빠 회사에선 직원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줬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 등록금이 납부하고 한참 지나 갑자기 인하됐다. 9만원 쯤 됐던 것 같다. 내 계좌로 입금된 그 돈, 공돈이다 싶었던 모양이다. 며칠 뒤 집으로 등록금 인하 공지가 날아들었을 땐 이미 흥청망청 다 써버린 후였다. 아빠가 내민 공지문을 보며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변명을 하진 않았다. 


아빠는 백원이 됐든 백만원이 됐든 돌려줘야 할 돈이라 말씀하셨다. 이미 쓴 돈은 어쩔 수 없으니 아빠가 그 돈 만큼 회사에 내마 하셨다. 부끄러웠다. 십 년이 훌쩍 지난, 새삼 감사하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행동하신 아빠가 자랑스럽다. 내것이 아닌 것을 내것처럼 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란 걸 모르지 않게 나를 키워주신 것도 감사하다. 



순실 씨는 참 나쁜 엄마였다. 


내 자식 앞길에 꽃길 깔아주고 싶은 마음이야 어느 엄마가 다를까. 하지만 불어온 바람 한 줄기에 그 꽃이 허공으로 흩어지기라도 하면 자식의 삶엔 흙길, 못길이 지천이다. 꽃길만 밟던 발바닥이 어찌 흙길, 못길을 밟아낼 수 있을까. 

 

순실 씨는 정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유라 씨도 그렇다.

순실 씨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지 못했다. 그래서 유라 씨도 그렇다.

순실 씨는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유라 씨도 그렇다.


그래서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엄마의 삶을 유라 씨가 그대로 산다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순실 씨의 변호인이 그런 말을 했다. 

유라 양은 좀 봐주자고. 


"유라 양은 스무 살이다. 풍파를 견딜 나이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 아량은 있지 않은가."


그 아량을 앗아간 건 우리 사회가 아니라 엄마, 순실 씨라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의 딸이었기에 유라 씨는 스무살이 아니라 그 곱절로 나이를 먹었던들 이 풍파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거라고. 


국민으로서 좌절했지만 엄마로서 크게 배웠다.

나라는 못 바꿔도 나는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난 순실 씨같은 엄마가 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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