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Feb 19. 2017

부모는 딱 한 번 떠난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48

이번에도 떠나는 건 나였다. 


한국을 떠나 산 지 4년. 이번에도 2달 남짓 한국에 머물다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늘 그러했듯 엄마, 아빠 집에서 지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었고 아빠가 태워주시는 차를 탔다. 떠나는 날도 엄마와 아빠는 내 곁을 지키셨다. 출국 수속을 밟으러 들어가며 아주 오래- 두 분의 시선을 느꼈다. 이번에도 떠나는 건 나였다.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두 분은 언제든 그 자리에 계셨다. 학교에 다녀온 날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감자나 옥수수를 쪄서 기다리고 계셨다. 고3땐 매일 밤 교문을 나서 따뜻하게 덥혀진 아빠의 차를 탔다. 공부한답시고 멀리로 학교를 가서도, 결혼해서 외국으로 나가서도 내겐 뒤돌아 걸어올 곳이 있었다. 


기다리는 건 부모의 몫이고, 떠나는 건 자식의 몫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부모는 단 한 번, 자식의 곁을 떠난다. 


3년 전, 사고로 시아버님을 잃었다. 소식을 듣고 급히 비행기를 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공기로 남편의 울음을 들으며 처음 알았다. 부모도 자식을 떠날 수 있단 걸. 그게 죽음이란 걸.

그 후로 밤 비행기를 탈 때면 어둠 속에서 그 먹먹한 슬픔과 상실감을 떠올린다. 어제도 그랬다. 



젊은 아빠의 편지, 내 딸 케이디에게


우연이었을까. 아이를 재우고 읽으려 들고 탄 책의 첫 장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서른 여섯 젊은 의사 폴 칼라니티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Air)'였다. 케이디는 폴이 고작 8개월을 볼 수 있었을 뿐인 딸 아이의 이름이었다.



언젠가 이 책을 읽게 될 딸 케이디에게 폴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독서등을 켠 채 잠든 남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3년 전 이 어둠 속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남편의 오열이 떠올랐다. 갑작스런 사고였다. 폴이 케이디에게 한 것처럼 작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린 아직도 아버님의 이야기를 쉽사리 꺼내지 못한다. 



언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내 딸의 곁을 떠나게 될 때,

나도 폴처럼 이야기하고 싶다. 


"딸, 우리 딸은 엄마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어.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하나 더. 

언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엄마와 아빠가 내 곁을 떠나게 될 때,

그 때도 폴처럼 이야기하고 싶다. 


"엄마, 엄마는 내가 평생 감사했던 기쁨이었어. 엄마 딸로 낳아줘서 고마워."


단, 그 순간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지금부터 질릴 정도로 자주, 오래 이야기하는 걸로. 

매거진의 이전글 순실스런 엄마가 유라같은 딸을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