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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May 10. 2017

엄마가 없어도 괜찮은 나라를 부탁합니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49

꽉 채운 3년을 키웠다. 육아는 뜻밖의 행복이었다.


입히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쳇바퀴 돌 듯 같은 날을 사나 싶다가도 짧아진 아이의 바짓단을 볼 때면 오늘이 아까웠다. 아이를 키우는 건 뜻밖의 행운이고 행복이었다. 그 행복이 너무 커서일까, 아이가 유순한 까닭일까. 육아가 힘들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대신, 자주 두려웠다. 



뉴스에서 아이들이 죽어나갈 때 두려웠다. 


온 나라가 새로운 대통령에 설렌 어제- 열 한 명의 아이가 죽었다. 뜨겁고 매캐한 차 안에 갇혀 죽었다. 3년 전 304명이 스러져 버린 그 시간의 감정이 떠올랐다. 얼마나 엄마를 목놓아 불렀을까. 지켜주지 못했단 생각에 그 엄마는 남은 생을 어찌 살까.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들려줄 때 두려웠다.


잠들기 전 엄마의 이야기 보따리에선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가 마구마구 튀어나온다. 이야기는 아이의 '왜?' 공격에 맥이 끊길 때가 많다. 그 공격은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에서 등장한다. 이를테면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어요.' 같은. 


"왜? 왜 부모님을 잃어?" 

"아파서 돌아가신거야."

"왜?"

"응? 흠, 나쁜 박테리아가 들어와서 아야아야 하게 되서 그런가봐."

"왜?"

"원아, 그래서 아까 원이는 치카치카해서 나쁜 박테리아를 무찔렀지. 그치?"


숱한 밤, 아이의 '왜' 공격을 받으며 깨달은 게 한 가지 있다. 참 많은 동화에서 엄마가 죽는다. 

 

신데렐라의 엄마가 죽었다. 

헨젤과 그레텔의 엄마도 죽었다. 

미녀와 야수에서 벨의 엄마도 죽었다. 

성냥팔이 소녀의 엄마도 죽었다. 

백설공주의 엄마도 죽었다.

겨울왕국에서 엘사의 엄마도 죽었다.

심청이의 엄마도 죽었다. 


엄마의 부재와 함께 아이는 커다란 시련을 맞는다. 물론 동화 속 위험은 행복한 결말을 위한 복선일 뿐이다. 현실적인 건 지켜주는 이 없이 거리에서 얼어죽은 성냥팔이 소녀 쪽이다. 현실에 백마탄 왕자님의 키스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엄마들이 죽을 때 두려웠다


수명에 평균은 없다. 젊은 죽음도 있다. 숱한 엄마들이 눈을 감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KBS 다큐멘터리 <앎>은 그 이야기를 다뤘다. 



이제껏 다른 죽음을 다룬 뉴스와 다큐 앞에선 슬펐고 안쓰러웠다. 하지만 아이를 두고 떠나는 젊은 죽음 앞에 느껴진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가슴이 뛰고 답답했다. 한숨보다 깊은 숨이 가슴에 막혀 나오지 않았다. 죽는 것보다, 아이를 두고 죽는 게 두려웠다. 아이를 지켜주지 못할 순간이, 아이가 이 세상에 홀로 남아 처하게 될 어둠이 두려웠다. 



엄마가 없어도 괜찮은 나라를 부탁합니다.


어젯밤 많은 이들이 희망에 부풀었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상식이 통하는 나라. 정의로운 나라. 꿈을 꿀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어주십사 이야기했다. 


난 그에게 '엄마가 없어도 괜찮은 나라'를 부탁하고 싶다.


세상에 엄마가 없어도 되는 삶은 없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내 딸에게 그런 삶이 주어질 수도 있다. 그 땐- 엄마 냄새나는 나라가 있어준다면 좋겠다. 엄마가 아이가 잘나 사랑하는게 아니듯 그저 국민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죽을 힘을 다해 지키고 끌어안는 나라. 젊은 엄마가 죽는 순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나라.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보냈다면, 

모든 엄마가 아이 곁을 지킬 순 없으니 나라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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