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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Aug 30. 2016

나는 아침밥 타령이 불편하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44

어젯밤 <냉장고를 부탁해>에

두 배우가 나왔다.


<냉부>는 가족들이 모여앉아 즐겨보는 몇 안되는 프로그램이다. 어제도 그랬다. 게스트는 남녀 배우였다. 


MC가 남배우에게 물었다. 

"아내분이 아침밥은 잘 챙겨주시나요."

20년 동안 아내가 갈아준 토마토가 그의 건강 비결이라 했다. 



이번엔 여배우에게 묻는다.

"남편을 위해 아침마다 해주는 게 있나요."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다. 여배우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아니, 근데"



"일 때문에 새벽에 나가고 하면 잘 못해주죠.

한가할 때는 그래도 챙겨주려 노력해요." 



나는 당황한 여배우의 표정에 당황하고 말았다. 



아침밥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우리는 어쩌다 한 번 보는 사람에게 인사한다. 

"밥은 먹고 다니니?"

우리는 자주 보는 사람에게 인사한다.

"밥은 먹었어?"

우리는 맨날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오늘 뭐 먹고 싶어?"


한국인에게 밥은 안부와 안녕의 상징이다. 그 중 '아침밥'은 의미가 좀 남다르다. 점심과 저녁은 밖에서 먹는다쳐도 대개 아침만은 '집밥'이기 때문. 해서 아침밥은 '아내/어머니의 도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 두꺼운 냄비장갑을 끼고 식탁에 낸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여보, 아침!" 우리 머릿속에서 장갑을 끼고 있는 이는 당연히 아내다. 시대는 바뀌었다. 여자도 일을 한다. 바쁜 아침, 된장찌개 끓일 시간이 없다. 문제는 시대는 바뀌었지만 인식은 그대로라는 것. <냉부> MC가 두 배우에게 던진 질문이 이를 증명한다. 



'고마운 수고'가 '당연한 도리'가 되는 순간


우리집 아침 식사는 내가 만든다. 불만은 전혀 없다.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이유를 곱씹어보니 이러하다. 나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보다 출근이 늦어서다. (엄밀히 말해 집에서 일을 해서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이 "고마워요. 잘 먹겠습니다."라고 매일 말하기 때문이다. 분명 30분 덜 자야 하는 수고임에도 불구하고 고생스럽지 않았다. 억울하지도 않았다. 아침을 준비하는 데 들인 내 노력이, 안하는 불량 주부 취급받는 '당연한 도리'가 아니라 해주면 꼬박꼬박 인사 듣는 '고마운 수고'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아범 아침밥은 챙겨 먹이냐?"


하지만 종종 어른들의 이 질문은 상당히 불편하다. '니 할 도리를 다 하고 있냐'는 심문으로 느껴져서다. 그게 당연하다는 그 분들의 뉘앙스가 느껴져서다.



우리 모두는 0점 짜리여야 한다


그 놈의 '도리 타령'은 아내만 불편하게 하는게 아니다. 남편은 자고로 돈을 벌어오는 게, 자식은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게 도리라고 들으며 컸다. 


한 상담 프로그램. 일자리를 잃은 남편에게 날카롭게 쏘는 어떤 아내의 말이 기억났다. '돈도 못 벌어오는 주제에' 그 아내에게 남편은 되받아쳤다. "당신은 뭐 아침밥 제대로 차려주기나 했어?" 그 놈의 도리, 도리, 도리가 이렇게 가족을 낚시줄처럼 옭아매고 있었다. 그 부부를 상담했던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두 분은 서로를 0점 짜리로 봐야 합니다."


서로를 100점 짜리로 생각한다면 남은 일은 점수를 깎아내리는 것 뿐이다. 돈 못 벌어와 -20점, 아침밥 안해줘서 -20점. 서로를 100점 짜리로 생각한다는 건 그의 수고를 당연한 도리로 여긴다는 뜻이다. 돈을 벌어오는 게 당연하고, 아침을 해주는 게 당연하고. 


만약 우리가 서로를 0점 짜리로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남편은 원래 0점이다. 

남의 돈 받아먹기 힘든 이 시대에, 남편이 벌어다주는 월급 봉투는 너무나 고마운 거다.

+ 백 만 점!


내 아내는 원래 0점이다.

잠 한톨이 소중한 이른 아침에 아내가 해주는 아침밥은 너무나 고마운 거다.

+ 백 만 점!



호의가 지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것처럼

수고가 지속되면 그게 도리라고 우리는 착각한다.


우리는 좀 더 서로의 삶에 기여하는 서로의 수고에 고마워 해야 한다.

고맙다는 말은 할 수록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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