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실패는 훌륭하다 #4
저녁이 썰렁해졌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후식 접시까지 비우고도 어색하게 빈둥댔다. 지문이 닳게 찾아대던 아이패드는 어디다 놨는지 기억도 없다. 장장 6개월을 하루같이 지키던 습관, '야구'를 끊은지 2주 만에 내 저녁이 이렇게 심심해졌다.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한화 이글스가 5강 싸움에서 졌다. 희망의 끈을 강제로 놓아야 했던 그 날부터 경기를 보지 않았다.
심심해진 저녁을 몇 권의 책과 몇 편의 드라마로 채우며 난 자꾸 짜증이 났다. 왜 하필 한화 이글스를 좋아해서 이리 사서 맘고생인지. 괜히 기아팬인 남편의 야구 시청을 소음이라 몰아부쳤다. 이런 마음은 나 뿐 아닌 듯 했다. 무섭게 승수를 쌓아갈 땐 포탈 사이트 실시간 중계 접속자 수가 십 만을 훌쩍 넘겼는데, 오늘은 간신히 1만을 넘겼다. 불과 2주 전까지 한화 이글스는 가장 많은 야구 뉴스의 소재가 된 팀이었다. 져도 기사가 났고 이기면 더 났다. 뉴스에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것도 늘 이글스였다.
우리 모두는 꼴찌의 반란을 보고 싶었다. 맨날 꼴찌를 도맡아 하는 저 팀의 드라마를 보고 싶었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 뿐인 주인공이 기어이 인생 역전을 해내고 마는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처럼. 축 늘어진 파김치 내 인생에도 그런 드라마가 일어나길 꿈꾸는 우리 모두는, 그래서 한화를 응원했다. 가을의 문턱에서 미끄러진 한화에 이토록 화가 나는 이유는 그래서라고, 퍽 오랜만에 경기를 보며 생각했다. 내 꿈을 대신 이뤄주지 않은 한화에 대한 실망이라고.
조금 더 솔직해져야겠다. 사실 나의 응원은 좀 치사했다. 난 꼴찌 한화를 응원한 게 아니었다. 꼴찌의 투혼에 박수친게 아니었다. 난 꼴찌의 승리에만 목말랐다. 이긴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몇 번이나 돌려보며 방방 뛰었지만 질 것 같은 경기는 일찌감치 리모콘을 놓았다. 꼴찌의 드라마를 보고 싶다며 한화의 팬인척 했지만 난 그냥 두산팬을 했어야 할 마인드였다. 세상은 이긴 자, 가진 자에게만 박수친다 힐난했던 주제에.
한화의 봄은 처참했다. '그래. 언제까지 지나 보자.' 싶을 정도였다. 4월 승률은 2할 6푼. 열번 싸워 세 번을 못 이겼다. 모두가 '역사상 다시 없을 최저 승률'을 일찌감치 점쳤다. 언감생심 가을 야구를 이야기하는 자는 전국에 0.5명도 없었다. 다른 인생에 빗대자면 학교도 부모도 포기한 10대 문제아가 바로 4월의 한화였다.
하지만 한화는 5월부터 이기기 시작했다. 그 후로 매달 4할 이상 이겼다. 7월엔 열에 여섯, 일곱을 이겼다. 10대 문제아가 미친 듯이 공부해서 대학을 갔고, 직장을 가졌으며 인정도 받은 셈이다. 모두가 문제아 출신 청년의 더 큰 성공을 열렬히 응원하기 시작했다. 한화팬들은 늦여름, 진짜 목이 터져라 한화를 응원했다. 하지만 청년은 크게 고꾸라졌다. 체력이 다 한 것인지 운이 다한 것인지 중요한 사업 기회를 놓친 것. 한화는 몇 번의 아쉬운 경기 끝에 가을 야구 진출 실패를 확정지었다.
주저 앉아 있는 청년에게 우린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그의 면전에 '그렇게 망할 거 뭐하러 시작했냐' 힐난해야 할까. 아니다. 이만큼 온 것만도 대단하다. 그리고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말해줘야 한다. 적어도 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 똑같은 말을, 한화 이글스에 건네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2할 승률에 포기하지 않고 가을의 문턱까지 온 것 하나만으로 박수 받기 충분하다. 이번 시즌은 끝이지만, 야구가 끝난 건 아니다.
야구의 승률은 5할 전후라지만, 우리 인생 순간순간의 승률은 그보다 훨씬, 훨씬 낮다. 우리는 많은 순간 실패한다. 입시에서, 연애에서, 시험에서, 취업에서 우린 많이 떨어지고 조금 붙는다. 떨어지고 좌절하는 그 많은 순간, 우리를 붙들어 주는 건 무엇일까.
몇 해 전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한 10대 소녀가 무대를 꾸몄고, 심사위원의 혹평과 함께 탈락했다. 기죽은 표정으로 무대 뒤 대기실로 들어선 소녀를 그녀의 엄마가 품에 안았다. 순간, 난 그녀의 엄마가 이렇게 이야기할 거라 예상했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정확히 이렇게 이야기했다.
"열심히 해서 괜찮아."
난 지금의, 혹은 미래의 성공만 응원받고 싶지 않다. 중간고사 1등 성적표를 가지고 갔던 날은 행복했지만, 2등 짜리 기말고사 성적표는 불행했다. 이겨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삶은 숨막혔다. 그 불행이 준 교훈은 '노력을 인정하고 응원해주는 것'이었다.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내가 원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계속 사는 것만으로 응원받고 싶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 말고 '최선을 다했으니 충분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부끄러워졌다. 한화의 가을 야구 실패에 등돌린 나에게.
지난 여름, 한화 경기에 쫄깃해진 전국 수십 만의 심장은 오롯이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 덕이었다. 혹사와 전술 논란이 거셌지만 그렇다고 이 악물고 덤빈 선수들의 투혼까지 부인할 순 없다. 포기하지 않아서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을 그들 덕에 우리는 참 호사스런 여름을 났다.
승리란 딱지가 붙지 않았더라도
뜨겁게 박수 받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한화의 경기에도, 우리의 인생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