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육아는 훌륭하다 #51.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은 행복이다. 나를 본 아이의 친구가 '원, 유어 맘스 히어'라고 전쟁터 전령이라도 된 듯 다급히 아이를 향해 외친다. 렛잇고를 목놓아 부르고 있거나 간식을 우적우적 먹고 있던 아이는 '마미~'를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달려온다. 아이를 안고 보고 싶었다 말한다. 아이는 오늘 샤샤와 변기 놀이를 했고 (!!!!), 철봉에 매달릴 수 있게 되었다며 시시콜콜한 일상을 이야기해준다. 간혹 어린이집 친구의 생일 파티가 있었던 날이면 얼른 선생님께 파티백을 받아가야 한다며 엄마 손을 이끈다.
풍선, 폭죽, 사탕과 과자를 담은 손바닥만한 봉지가 아이에겐 참 큰 기쁨이고 설렘이다. 어제도 그랬다.
파티백을 엄마 손에 꼭 쥐어준 채 마저 렛잇고를 부르고 오겠다며 아이는 또 달려간다. 나는 작은 소파에 앉아 엄마로서의 삶이 주는 큰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때 한 아이가 스윽 내 옆으로 다가온다. 며칠 전부터 보였던 인도 아이 아라프다. 커다란 눈을 꿈뻑이며 내가 들고 있던 딸의 파티백을 만지작거린다. 아직 아라프의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아 파티백을 못 받은 눈치. 괜한 상처를 줄까 싶어 하는 대로 두었더니 딸 아이의 파티백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딸과 눈이 마주쳤다. 작은 눈망울에 불안과 걱정이 가득이다. 렛잇고는 불러야겠고, 친구가 자신의 파티백을 노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 난 딸에게 걱정말라고 말하며 아라프를 타일렀다.
"이건 친구꺼니까, 엄마 오시면 아라프도 받아갈 수 있어."
하지만 막무가내다. 내가 쥐고 있는 파티백의 손잡이를 잡아뜯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다가와 아이를 말렸다. 내 옆에 앉아 아이의 관심을 돌리려 애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이가 내 말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아이는 들리지 않는 말을 뒤로 한 채 계속 딸의 파티백을 파고들었다. 입은 앙 다물었고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작은 손으로 어찌나 열심히 당겼는지 딸의 파티백은 길게 찢어져버렸다.
멀찌감치에서 보고 있던 딸의 불안이 점점 커졌다. 렛잇고가 끝나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아라프의 엄마가 들어왔다.
"으앙!!!!!!!!!"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로 화기애애했던 어린이집이 돌연 아라프의 대성통곡으로 가득 찼다. 엄마를 보자마자 아라프는 굳게 다물고 있었던 입과 눈을 열어 마구 슬픔을 쏟아냈다. 내가 딸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나올 때까지 아이는 그렇게 울었다.
겨울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길을 따라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딸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귀를 겉돌았다. 대신 아라프의 울음이 귀에 고여 있었다. 말 한 마디 없이 꾹 다문 입으로 일관했던 아이가 크게 울음을 터뜨렸던 건 엄마의 품이었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낯선 피부색의 사람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야 했던 아이. 그건 불과 몇 달 전의 내 딸이기도 했다.
어린이집에 처음 가기 시작한 아이들이 그러하듯 딸은 아침에 어린이집 문 앞에서 아빠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한참 그 울음을 받아주던 남편이 출근 시간에 쫓겨 아이를 선생님의 품에 맡기고 나서는 걸음은 참 무거웠다. 남편은 차마 바로 떠나지 못하고 창문으로 몰래 아이를 보곤 했다. 아이는 큰 울음을 그치고 잔울음을 훌쩍이고 있었다. 내게 전화해 아이가 괜찮아진 듯 하다 이야기하는 남편의 말에 안도했었다.
하지만 그게 '괜찮아서' 그친 울음이 아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비빌 언덕이 사라진 아이는 목놓아 울 수 없었던 것 뿐. 이젠 어린이집 가는 게 큰 재미가 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몇 달 전에 흘렸어야 할 울음을 이제야 삼켰다.
나는 아이처럼 울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아주 가끔 마음이 무겁고 슬플 땐 속으로 삭여 운다. 눈물은 대개 흐를 뿐, 터져 나오진 않는다. 그건 아마 커다란 울음을 받아줄 엄마가 옆에 없어서, 말없이 품에 가득 안고 토닥여줄 커다란 존재가 없어서일거라고 아이에게 파티백 사탕을 까주며 생각했다.
두번째 사탕을 까주며 다짐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오래 품을 내주자. 아이가 울고 싶을 때면 언제든 달려올 수 있는 존재로 오래오래 곁에 있어주자.
부족하고 서툴지만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