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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n 07. 2017

치킨의 거장

"딸. 니가 좋아하는 오부장 치킨 망했더라."



난데없는 비보였다. 오부장은 친정집 앞에 있는, 내가 무수한 매상을 올려준 동네 치킨집. 내 마음에선 비비큐도 이기고 교촌도 이긴 집이다.


폐업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작게 우울했다. 한국에 머물 때마다 그 치킨집은 내 기쁨이었다. 퇴근길, 피곤을 켜켜이 쌓은채 버스에서 내리며 '5분 후 후라이드 포장'을 외치곤 했다. 가게 문에 달린 종을 울리며 들어가는 순간 무를 담고 있던 사장님의 정확함은 늘 경이로웠다. 넙적다리 뺨치게 부드러웠던 닭가슴살은 또 어떠했던가. 그러나 날 매혹시킨 건 베어무는 순간 느껴지는 아삭함과 기름짐의 베스트 밸런스- 절정의 튀김옷이었다. 그로 인해 난 치킨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거늘 그 튀김옷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니.


치킨은 흔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군계일계는 분명 있다. 한철을 버티지 못하고 셔터 닫는 가게가 숱한 세상일지나 세대를 넘어가며 점점 명성이 쌓이는 집도 분명 있었다. 오천억 말고 오천원짜리 후라이드 반마리에도 그 차이는 있다.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 모든 기업들이 가치있는 회사가 되고자 노력한다. 가치있냐 없냐의 기준은 분명하다. 그 기업이 없어졌을 때 아쉬워하는 이가 하나라도 있는가. 오부장 치킨의 폐업 소식에 입가에 침 대신 아쉬움을 머금었던 나처럼.


기업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누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나는 가치있게 살고 싶다. 직장인으로서, 엄마와 아내, 딸로서 난 가치있고 싶다. 언젠가 회사에서, 세상에서 내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을 상상했다. 나도 뭔갈 갖고 싶었다. 오부장 아저씨의 튀김옷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버스에서 내려 집을 향해 걸었다. 오부장 치킨자리엔 어떤 가게가 들어왔을까. 군침도 설렘도 없이 슬쩍 쳐다본 그 자리. 세상에- 오부장 치킨은 있었다. 여전히 튀김옷은 눈부셨다. 네온싸인 보다.



아무렴. 망할 리 없었다. 그 튀김옷이 팔리지 않을 리 없었고 그 옷을 입히는 오부장 아저씨가 망할 리 없었다.


오부장 아저씨는 외국분이다. 터키에서 오셨다고 들은 것도 같다. 적어도 처갓집이나 페리카나를 먹으며 자란 치킨 네이티브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치킨의 거장이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험난했을 시간을 거쳐 그는 가짜 폐업뉴스에 이토록 안타까워 하는 팬을 거느린 치킨의 거장이 되어 있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늦었다고 둘러댔던 나의 핑계들이 부끄럽다.


자, 나는 무엇의 거장이 될 것인가.

내가 회사를 나올 때 나의 무엇을 아쉬워하게 할 것인가.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나의 무엇을 그리워하게 할 것인가.


아무래도 오부장 치킨의 튀김옷을 베어물어야만 영감이 올 것 같다. 오늘 밤에도 닭이 튀김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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