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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n 08. 2017

잃을 수 없는 브랜드

작년이었나. 한동안 내 마음을 흔든 가방이 있었다. 구찌의 디오니소스란 가방이었다. 차르르 미끄러지는 빨강에 사르르 초록 분홍꽃잎을 올려놓았더랬다. 초록창에다도 쳐보고 구글신에게도 여쭤봤다. 사지도 않은 가방을 어떤 옷에 매치해야 할 지 생각하며 잠들곤 했다. 



이 가방을 보게 된 건 인스타에서였다. 평소 좋아하는 와이초 Y-CHO라는 구두 디자이너가 이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군살없는 늘씬한 몸매와 나무랄데없는 감각에 저 가방은 화룡점정이었다. 



그녀의 블로그와 인스타는 늘 흥미로웠다.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이 늘 등장했고 여자들이 혹할 법한 맛집과 여행 이야기도 그득했다. 하지만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문 건 그녀의 '구두 이야기'였다. 런던 여행길에도 '이런 구두를 만들고 싶다'고 그녀는 상상했다. 맛난 브런치를 먹으면서도 '제가 만든 구두 너무 이쁘다'며 스스로 감탄했다. 아마 저 가방을 살 때도 '어떤 구두와 가장 잘 어울릴지'를 먼저 생각했을 그녀. 그녀는 구두를 참 좋아했고 잘 만들었다. 




가방은 300만원 정도 했다. 서른 중반, 사려면 사지 못할 것도 없었다. 친구들은 부추겼고 남편도 말했다. '와이낫.' 하지만 난 결제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갖고 싶은 건 '구찌'란 브랜드가 아니라 '나'란 브랜드였다. YCHO 디자이너가 멋져 보이는 건 저 가방 덕이 아니다.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브랜드, 유행을 탈 수도 어디가서 잃어버릴 수도 없는 브랜드- 구두 디자이너로서의 YCHO. 그녀란 브랜드가 참 멋졌다. 





지난 주말 서점에서 책을 여럿 샀다. 출근길 무릎 위에 올려놓고 밑줄 그으며 읽었다. 차가 막힌 덕에 벌써 두 권을 뗐는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이제 이 책을 버스에 놓고 내린다 해도 난 기억한다. 내 생각과 내 삶에 켜켜이 지식을 쌓는 게 행복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창시절에도 다닌 적 없는 학원을 서른 중반에 참 열심히 다니고 있다.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 우걱거리는 쾌락을 과감히 포기했다. 비에 젖은 신발이 주는 끕끕함도 잊고 배웠다. 즐거웠다. 이 시간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시간이란 확신이 있었다.


언젠가 빨간 꽃무늬 가방을 갖게 된다면 좋겠다. 읽고 싶어 눈이 근질거리는 책 두 어권과 쓰고 싶어 마음이 바쁜 펜 한 자루 넣고 다니게 기왕이면 큼직한 놈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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