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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n 09. 2017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실력입니다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지금은 오후 9시. 난 퇴근 후 순대국 한 그릇으로 요기하고 외부 교육을 듣고 있다. 아이라인이 번져 팬더가 되어가고 있을 지언정 정신은 상큼하다. 어제 이 시간의 기분과는 사뭇 다르다.


어제 이 시간에도 난 강의를 듣고 있었다. 모 대기업 부장 출신의 강사였다. 내내 불쾌했다. 강의 내용이 문제는 아니었다. 평일 저녁 기십명을 모아놓고 유료 강의를 할 정도면 그 실력을 내가 가타부타 논할 순 없다. 문제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는 강의 내내 사례를 제시했다. 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흐름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의 -편의상 A라 한다- 예시는 불쾌했다. 동그라미 안에 19라고 장표에 써놓곤 대뜸 잠자리 이야기를 꺼낸다. 


"남자가 돈은 버는데 잠자리가 시원치 않으면 아내가 그래요. '밥만 먹고 살아?'"


듣는 이들 어느 하나 웃지 않았다. 남자들이 아내를 선택하는 이야기를 하면서는 더 요상하게 이야기가 돌아간다. 


"못 생긴 아내랑 살게 되면 살면서 계속 뜯어 고쳐줘야 되요."


역시 웃는 사람은 그 하나였다. 몹시 불쾌했다. 그게 어쩌다 한 실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런 보고서 가져가면 어떻게 되요?"

아무도 답이 없자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한다. 


"부장님한테 얻어맞죠."


그의 강의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모든 것을 망쳤다.



하루가 지났다. 

지금 내 앞엔 강의 중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강사 B가 있다. 그의 강의의 수준은 어제 A와 비슷했다. 하지만 태도의 차이는 현격했다. 


"지금부터 대선을 예로 들텐데요. 앞에 직함이나 뒤에 '님'자는 생략해도 되겠습니까?"

그는 우리가 늘 하듯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라고 짧게 부르는 것을 불편해했다.


"어르신들께 전화를 드리면 참 정답게 받아주십니다."

A라면 이랬을 것 같다. "노인들 할 일 없잖아. 그니까 전화하면 좋~아하지."



강사의 제 1덕목은 누가 뭐래도 실력일거다. 하지만 그 실력이 단순히 강의 퀄리티는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을 묘사하고 청중을 대하는 태도도 실력이다. 나는 A의 강의를 듣는 내내 가시가 돋혀 있었다. 불편했다. 당연히 100% 집중할 수 없었다. B는 달랐다. 사실 이 강의는 B의 인생 첫 강의라 했다. 본인 말대로 많은 게 서툴렀다. 심지어 PPT 구동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듣는 내내 유쾌하고 즐거웠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웃었고 서슴없이 질문했다. B의 이야기는 어리숙할지나 귀에 잘 들어왔다. 


일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귀를 쫑긋하게 되는 사람이 있고 달팽이관에 가시 돋게 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이를 결정짓는 건 평소 그가 나를, 다른 이들을 어떻게 대해왔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상대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면 내 귀는 열린다. 그래서 인성은 업무 현장에서 실력이고, 매력이다. 


A는 군생활을 오래했다고 했다. 건설사에서도 오래 일했다. 그래서 위에서 내리꽂는 듯한 무례한 태도가 몸에 배었을 지도 모르겠다. B는 여러 차례의 이직을 거쳐 오늘이 첫 강의라 했다. 이전 회사 이야기를 하며 그가 그랬다. 


"어느 날인가 보고서를 가지고 갔는데 상사분한테 엄청 혼이 났어요. 혼나면서 퇴사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혼난 건 문제가 아니었어요. 잘못 했다면 혼날 수 있죠. 하지만 문제는 제가 뭘 잘못했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는 전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는 거에요. 고인 물 같았어요."


두 강의는 참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매력이고 실력이라는 깨달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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