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쌀쌉싸름했던 2018년이 갔다.
어이없는 이유로 10년지기 K와 절교했던게 9월이었던가.
월급도둑이란 자괴감에 맥도날드에 앉아
감튀에 눈물 찍어먹었던 건
고즈넉한 가을이었다.
교회가란 엄마의 푸시에 혈압이 오른 건
어느 하루만은 아니었고,
버스 기다리다 눈풀린 누군가에게
험한 말을 들은 건 코끝 시린 겨울이었다.
그러고보면
2018년에도 대부분의 날은
달달함보단 쌉쌀함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소싯적 마냥 베갯닢 적시며 잠든 날은 드물었다.
그토록 쌉쌀한 날에도
뒷맛은 대개 달달했다.
보통 입이 쓴 일들은 오후 6시 이전에 일어나곤 했다.
삶은 녹록치 않다.
'등골이 오싹해진다'는 생물학에 충실한 표현이었다.
'말문이 막힌다'는 표현은 또 어떻고.
'콧구녕이 두 개였으니 망정이지 하나였으면
기가 막혀 죽을 뻔 혔다'는 할머니의 표현은
가히 선지자급이었다.
그런 씁쓸한 날에도 퇴근 시간은 온다.
버스 출발 시간을 계산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엔 몇 개의 키워드가 둥둥 떠다닌다.
#150번 버스타면_왼쪽 맨뒷자리
#카톡으로 폭풍 넋두리할_내친구 수지
#도로위 힐링은_장범준 정류장
#데이터 남았으면_막례할머니 염병타령 무한재생
#아싸_가방 속엔_휘태커 아몬드골드
#버스에서 내리면_스타벅스 바닐라 더블샷 시럽x2 얼음넣은 톨컵
#그거 들고_집가는 길 활기 만땅 먹자골목 눈으로 먹방
#진짜 저녁으론_반마리에 5500원 동네 닭집 후라이드
#이불 속에 폭 들어가_넷플릭스 심야식당 '따라라라 라라 라라라라 라~'
#내일 출근룩은_베이지색 슬링백 + 랩원피스
'정말 좋아합니다. 너님을요.'
강백호의 채소연 마냥
누군가 '그거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침 튀기며 눈 반짝이며 말할 수 있는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 2018년엔 유독 많았다.
그래서
쌉쌀했던 대부분의 날들도
끝맛은 제법 달달할 수 있었다.
'잘할거야' 말고 '좋아할거야'
서른 몇 해 동안 새해 목표는 좀 뻔했다.
영어 점수 몇 점, 다이어트 몇 키로, 책 몇 권.
이를 통해 결국 뭔가를 '잘하게, 잘하게, 잘하게'
하지만 좀 살아보니
그 목표들은 금세 잊혀졌다.
하기 싫은 마음을 애써 들어 앉히려 정한 목표 따위
오래 갈 수 있을리가.
2019년 목표는 좀 다르게 잡아보려 한다.
'좋아할테다. 더 많은 것들을, 더 깊이있게.'
장범준의 정류장을 듣고 있자면
모든 게 괜찮아졌다.
그런 노래 한 두 개 더 알고 싶다.
휘태커 아몬드 골드를 가방에 넣고 있자면
마음이 그렇게 든든했다.
그런 초콜렛 두 어 가지 더 찾고 싶다.
베이지색 슬링백을 신은 날이면
미들턴처럼 우아해지는 기분이었다.
슬링백 다른 색깔 하나 더 겟해야지.
내친구 수지와 수다를 떨고 있자면
고민은 사라지고 내가 퍽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런 친구 한 명만 더,
아니다.
수지에게도 그런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그리하여, 2019년의 목표는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삶'
일상은 필연적으로 고단하고 쌉쌀하다.
그 대부분의 날들을
쌉쌀한 기억에 사로잡혀
베갯머리 적시며 잠 못 이루는 건 아무래도 아깝다.
그 순간 필요한 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나를 다독일 수 있는 여유다.
그 여유를 만드는 건
소소한 일상의 '최애'들이란 걸
2018년에야 비로소 알았다.
최대다수의 최애를 발굴할 것.
2019년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