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Jan 01. 2019

아이와 종교를 강요해선 안되는 이유

미치고 팔딱. 20년짜리 종교 전쟁


10년 전의 일이다. 

검은색 소나타에 탄 일가족 5명.

우리는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난 왼쪽 뒷자리였다.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내게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머리 굵어진 난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았고, 

열혈 권사님인 엄만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교회로 가는 그 몇 십분동안 날선 말로 서로를 공격했다.

할머니는 옆자리에서

'주여, 주여'를 읊조리셨다.

잔뜩 날 선 성경으로 얻어맞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래 쌓인 화의 또아리들이 폭발했다. 

그 또아리들이 정수리까지 차오르자

난 당장 내리겠다고 미친년처럼 악을 썼다.

그제야 차 안이 조용해졌다.

그제야 엄마의 20년짜리 교회 타령이 잦아 들었다.



남극센터에서 마주친 한 줄. "아, 이런 기분이구나."


그 후, 어쩌다 남극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갔다. 

오래 전 남극을 탐험했던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남극센터도 코스에 있었다.

보트도 전기도 없었던 그 시절

개썰매를 끌고 남극으로 떠난 이들은 

결국 대부분 죽었고, 돌아오지 못했다.

내 시선을 끈건 그들 가족의 기록이었다. 

탐험에 나서는 아들, 남편을 말리지 못해 애가 닳았던

그네들의 감정이 글자 몇 줄에 담겨 고스란히 전해졌다.

죽으러 가는 게 뻔한데 어찌 말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문득 나를 향해 핏대를 세우던 

일요일 아침의 엄마를 떠올렸다. 


'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신실한 종교인에게 신은 삶의 진리다. 

그 분을 믿지 않는 이에게 희망은 없다. 

쉽게 말해 영원히 살지 못한다. 

엄마에겐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다. 

사랑하는 딸이 죽어서 지옥에 간다니. 


개 몇 마리 끌고 어디 있는지도 모를 남극을 탐험하겠다는

아들을 말리고픈 이름 모를 여인의 마음에서

30년 넘게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느꼈다.



둘째 낳으라구요? 교회가란 말처럼 들렸다. 


그간 살며 부딪친 몇 개의 벽이 있는데

종교와 쌍벽을 이룬 것이 '아이 타령'이다.

첫째야 물흐르듯 어찌어찌 낳았지만 

둘째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첫째로 실전을 치뤄보니 아이는 장난이 아니었던 것. 

둘째 생각은 멀리 달아났다.


하지만 어른들은 달랐다.

첫째가 돌이 지날 무렵부터 압박은 시작되었다.

'아직이니?' 

'낳아보면 얼마나 좋은데'

'둘은 있어야 돼.'


처음엔 웃어 넘겼고

그러다 반발했다.

하지만 벽은 달리 벽이 아니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나의 대답은

어른들을 더 초조하게 할 뿐이었다.

2년짜리 둘째전쟁은

20년짜리 종교전쟁의 데자뷔같았다.



둘째를 낳았다. 단, 내가 낳고 싶어서 낳았다.


인생에 반전은 숱하다.

지인들은 내가 둘째를 낳은 것을 놀라워했다.

어른들 둘째 압박에 두 손 든 것이냐 묻는 이들도 있었다. 

"아뇨. 둘째 타령 안하셨으면 더 일찍 낳았을걸요."

둘째 타령하실 때마다 '마이너스 1'되던 둘째 게이지가

첫째가 이쁜 짓할 때마다 '플러스 1'되었다.

첫째가 너무 이뻐

황폐해질 삶을 알고도 둘째를 낳았다.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아이와 종교는 같다. 귀로 배워지지 않는다.


둘째를 낳고 행복에 겨워 있는 내게 

엄마는 놀리듯 말하신다. 

"것봐. 엄마가 둘 낳으면 좋다고 했지?"

굳이 엄마의 우쭐감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대충 맞장구치고 넘어갔다만

실상은 달랐다. 


'엄마, 엄마가 좋다고 해서 낳은 건 절대 아니여.

엄마가 압박 안했으믄 1년은 빨리 낳았을걸?'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위해

신, 혹은 아이를 강요하는 이들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다. 


아이도, 신도 '정말 좋은데 왜 안 낳(믿)니?'라고

떠들어서 될 일이 아니다.

둘 다 스스로 느끼기 전엔 믿어지지 않는 영역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아이, 혹은 종교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고자 한다면

당신의 최선은

그저 묵묵히 당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닐런지.


당신이 당신의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걸 보여주는 것. 

당신이 신을 믿고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것.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어 믿어지고 낳아지는 게 아니라

몸으로 행하고 눈으로 보아서 그리 되는 것이 

아이, 그리고 종교의 공통점이다.



+


갓 태어난 둘째를 볼 때마다

심장이 팔딱팔딱 나댄다. 

근래 첫째를 낳은 오빠와 친구들도

둘째를 낳으면 요 기쁨을 느낄 거라 확신한다.

마음으론 추천 버튼을 100번은 더 눌렀다.

하지만 그들에게 둘째 타령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둘째로 인해 말도 못하게 행복해진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다.


아마도, 그만한 전도 스킬은 없을 듯. 



작가의 이전글 2019년 목표 '좋아하는 게 많은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