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56
강경화 씨가 장관이 되었다.
나와 나란히 앉아 팩을 하며 뉴스를 보던 엄마는 그녀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민낯같은데 어쩜 저리 빛이 난다니."
그녀의 백발과 목소리, 지적인 분위기까지 연신 칭찬하던 엄마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저 옆에서 바둑을 두던 아빠에게 묻는다.
"여보 근데 강경화는 몇 살이래?"
"글쎄. 당신이랑 비슷할 걸? 60? 61?"
(엄마는 57년생 닭띠,그녀는 55년생 양띠였다.)
엄마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난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그녀가 부러웠다.
내 딸은 네 살이 되었다. 시댁 어른들과 이모들, 하물며 동네 아줌마들도 둘째를 채근하신다. 엄마는 예외였다.
"있으면 좋겠지. 하지만 강요안해. 니 삶인걸."
엄마는 알고 있었던 거다. 지금 내 상황에서 둘째를 선택한단 건 일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달 걸, 내가 일을 너무 좋아한단 걸.
며칠 전 난 카페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습관처럼 책을 꺼내 밑줄 그으며 읽고 있었다. 오랜 시선을 눈치챈 건 책을 열 페이지도 넘게 넘긴 후였다. 엄마는 나를 황홀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다음에 태어나면 딸처럼 살고 싶네."
독실한 권사님에겐 있을리 없는 다음 생이지만, 엄마의 눈빛이 소녀처럼 빛나서 딴지를 걸 수 조차 없었다.
엄마는 고된 시집살이를 서른해 가까이 버티셨다. 그 시절이 서럽고 속상해 이따금 눈물을 쏙빼며 엄마에게 따졌다. 왜 그리 당하고 살았냐고. 엄마는 담담했다.
"가정을 지키는 게 엄마의 일이었어.
밖에서 일했다면 다르게 살 수 있었겠지만
그때로선 그게 유일한 삶이었어."
강경화 장관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엄마를 보며 그 시간이 하나하나 뇌리를 스쳐간다.
'강경화보다 울 엄마가 더 멋진데?'
그 한 문장이 무뚝뚝한 딸래미의 입안을 백번쯤 맴도는 사이 엄마는 세수를 하러 소파에서 일어나셨다.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가 튀겨줬던 감자. 햄버거 안 사준다고 툴툴댔지만 그 감자가 요즘도 생각난다. 빵만 두껍다고 투덜댔지만 엄마가 만들어줬던 피자가 참 좋았다. 매일 아침 보온도시락에 싸준 동그랑땡도 그랬다. 어디 먹을 것만 그랬을까.
엄마가 아파트 재활용날 열심히 주워다 나른 책 읽으며 펜맛 종이맛을 알았다. 학원 하나 과외 하나 하지 않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집에서 맞아준 엄마 덕에 혼자인 적은 드물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와서야 며느리 손을 잡아준
할머니에게도 엄마는 외로운 말년, 말동무가 되어준 은인이었다.
그 시절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낸 엄마 덕에
호된 사춘기 없이 자란 오빠에게도 엄마는 은인이다.
지난 달, 엄마가 여행간 덕에 육십 평생 처음 세탁기를 돌려본 아빠에게도 엄마는 집안 걱정 없이 직장생활하게 해 준 은인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요즘, 일을 놓게 되더라도 둘째를 갖고 싶단 생각을 한다.
돈을 벌지 않아도 사회인으로 인정받지 않아도 내 아이들의 삶에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괜찮지 않을까.
이른 새벽 딸래미의 출근길을 배웅하러 나온 엄마의 맨발을 보며 든 생각이다.
엄마의 삶이, 그만큼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