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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Aug 04. 2017

개인주의 엄마의 여자아이 육아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57

개인주의자 임경선 작가의 상담

<여자아이 육아에서 중요한 것>


임경선 작가는 내 또래 여성들에겐 사이다같은 존재다. 그녀에겐 당당함이 내재되어 있다. 타인의 무례한 시선에 움츠려드는 대신 "뭘 꼴아봐?"라 쏘아붙이는 듯한 문장은 압권이다. 그녀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 <개인주의 인생상담>을 연재한다. 이번 회차 (9회)는 알림이 뜨자마자 혹했다. 오늘의 주제 중 하나가 '여자 아이 육아'였던 까닭이다. 멋진 개인주의자 임경선 작가를 좋아한다. 딸애 하나를 가진 엄마로서의 시각도 궁금했다. 


아래는 실시간으로 받아적은 그녀의 목소리다. 



(임경선) 나는 솔직히 육아에 관심이 없다. 하늘에서 날 닮은 애 하나를 우리 집에 배당해주었고, 건강하게 키워서 성인이 되면 품에서 떠나게 하자는 생각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보다 내 인생에 관심이 많다. 여자아이란 점을 특별히 의식했던 적은 없다. 나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이렇게 해야지'란 걸 결심해본 적도 없다. 다만 9년 육아의 깨달음은 있더라. 


(임경선) 1. 딸에게 '하지마'란 말을 하지 않았다. 


대놓고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가능한 한 경험해서 호기심이 풀리게 해줬다. 설령 내가 귀찮더라도. 밖에서 놀고 싶다면 아무도 없는 한밤의 놀이터에 같이 있었다. 요리 하고 싶어하면 냉장고 안 재료를 낭비하고 부엌을 어질러놔도 그렇게 놔뒀다. 조심해라, 위험하다- 과잉보호를 하게 되면 나부터 숨이 막힐 것 같았다. No를 하지 않아서 좋은 점은, 정말 필요할 때 말하는 'No'를 정말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받아들인다. 안된다면 안되는 것으로. 


(임경선) 2. 딸의 감정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준다. 


감정을 표현할 때, 그 감정을 판단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엄마에게 표현하려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경건한 마음으로 듣게 된다. 엄마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기와 가까운 누군가가 사소한 나의 감정에 귀를 귀울인다는 게 정서적 안정감에 큰 도움이 된다. 


(임경선) 3. 딸에게 다양한 직업을 가진 어른들을 접하게 해준다. 


만화가, 편집자, 화가 같은 어른들과 만나게 해 줄 기회가 많았다. '어른들의 장소'에도 편하게 데려갔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장소에서의 행동을 터득할 수 있는 연습. 그 안에서 어울리는 매너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보통 아이들에게 어른은 부모, 친척, 친구부모, 선생님. 너무 나를 이뻐하거나 직업적으로 대하는 것 외에 '인간대 인간'으로 대해주는 어른들의 존재는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을 준다. 경험의 폭이 넓어진다. 세상에는 괜찮고 재미있고 지혜로운 어른들도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 그들과 같이 지내려면 나부터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임경선) 4. 어른에게 사랑받는 어린이가 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공동체에 해를 끼치면 안된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공손할 필욘없다. 동네 어른들에게 배꼽인사를 시킨다거나 친척 모임에서 장기자랑을 시키지 않는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어른들 즐거우라고 억지로 재롱 피우고 용돈 몇 푼 쥐어주는 관습이 싫다. 싸가지 없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정도 못될 필요는 있다. 여자애라고 싹싹하고 웃어주고- 그럴 필요 없다. 



(임경선) 단, 아쉬운 점은 딱 하나 있다. 어렸을 때 딸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지 못한 것. 각자 저녁 시간에 자기 책들 읽느라 정신이 없어서 딸에겐 읽어주지 못했다. 어렸을 때 자기 전 부모와 함께 침대에서 책을 읽는 그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부모가 책을 보는 걸 보여주면 아이도 좋아할 거라고 믿었는데, 완전 망했다. 딸은 책 읽는 걸 싫어한다. TV보고 인스타그램 본다. 내 심각한 고민이다. 어떤 습관들은 노력으로 어렸을 때 잡아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도 딸아이를 키운다. 임경선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의 육아를 끼적이게 된다. 


(Yoon) 1. 일단 내가 행복해야 한다.


엄마는 희생하는 존재여선 안된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육아와 출산을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며' 하는 희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이의 마음을 빚지게 하고 내 마음을 억울하게 하므로. 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억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자주 '엄마로서만' 살아야 한다는 죄책감, 시간과 공간의 한계와 부딪힌다. 아이를 생각하되, 나도 생각한다. 지난 달 두 달의 출장은- 그래서 갈 수 있었다. 균형을 잡고 싶다. '엄마로서만' 살기에 우린 너무 많은 기쁨을 아는 세대다. 웃으며 살고 싶다. 그 모습을 보고 내 딸도 인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Yoon) 2. 넌 예쁘고, 또 멋지다고 말해왔다.


할머니 육아는 치명적으로 따뜻하다. 눈에 하트 뿅뿅 손녀를 향한 사랑을 뿜으신다. 감사한 일이다. 사랑의 방식은 다른 법이니, 어지간해선 할머니표 육아에 토를 달지 않는다. 단 예외는 있다. 한 번은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 변기에 앉아 임무(?)를 힘겹게 수행한 아이에게 '멋지다'는 칭찬을 한 후 였다. "엄마, 걸들은 이쁜 거고 보이들은 멋진거야. 난 이쁜거야. 할머니가 그랬어." 그 자리에서 열 번을 이야기했다. '넌 예쁘지만, 멋지기도 해.' 그 날 밤 침대책에선 일부러 신데렐라를 뺐다. 아이에게 검도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남편의 마음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Yoon)  3. 사랑해, 고마워를 흔한 말로 만들었다.


흔해지는 게 두려워 아끼게 되는 게 있다. 사랑한단 말, 고맙단 말도 그렇다. 하지만 아끼다 똥되는 걸 나는 많이 봐왔다. 흔해진다고,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랑과 감사 만큼 흔해질수록 귀해지는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 잠에서 덜 깬 아이에게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어디 멀리 가는 것처럼 어린이집 배웅 인사를 하며 사랑한다고 열 번 쯤 고백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하는 것도 사랑 고백. 아이는 부모의 말과 삶을 배운다. 아이도 사랑을 입에 달고 산다. 출장 간 아빠와 영상통화를 하며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제일 사랑해요'란 고백으로 경상도 남자를 심쿵하게 한다. 


(Yoon) 4. 돈 벌려고, 하지만 즐거워서 일한다고 말해왔다.


돈을 번다는 건 쉽지 않다. 시장에서 내 가치를 끊임없이 인정받아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린 월요병에 걸리고, 목요일 저녁부터 설렌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 죽지 못해 출근하는 친구들이 숱하다. 하지만 본인의 선택과 시각에 따라 분명 즐거울 수 있는 일이다. 출근길로 기억한다. 어머니가 딸에게 그랬다.


"원아, 엄마는 돈 벌어서 원이 맛있는 거 사주려고 일하는거야~"


덧붙였다.


"엄마는 재밌어서 일하러 가. 그리고 원이 사탕도 사줄거야."


돈 벌려고 힘들게 하는 게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지 않다. 딸이 돈 많이 벌려 일할까 두렵다. 그래서 마냥 괴롭고 힘든 일을 억지로 하며 살게 될까 두렵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운이 따라야 겠지만, 그 운은 '일 = 돈 = 힘든 것'의 공식이 탑재된 이들의 눈엔 잘 띄지 않는다. 



눈물 쏙 빼게 힘들지만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있단 것, 

일단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단 것,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천국도 지옥도 될 수 있단 것- 


육아와 일이 그러고 보면 참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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