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독서는 훌륭하다 #3
'나는 왜 이럴까'
이십대 중반을 지나며 진지하게 생각했다.
불현듯 치솟는 '화'를, 가족에 대한 '원망'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다 '트라우마'란 단어에 꽂혔다. 할머니에게 차별받은 손녀, 사고뭉치 오빠에 치여 얌전한 모범생으로 살았던 둘째, 자식의 울타리 대신 부모의 효자로 산 아빠의 딸. 오랜 시간들을 추리하듯 찾아냈다. 내딴에는 해묵은 감정을 삭힌답시고 부모님께 눈물바람도 했다. 그때의 내가 그랬다고- 기억보단 감정으로 남은 시간들을 들추어냈다.
하지만 개운치 않았다. 몰랐다며 우는 엄마의 눈물에도 변한 건 없었다. 난 여전히 돌아가신 할머니가 미웠고 참고만 산 엄마를 원망했다.
경종을 울린 건 내 긴 넋두리를 듣던 친구의 한마디였다.
"이제 니 인생 니가 살 때도 되지 않았어?"
그 며칠 후 읽은 책이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이었던 건 행운이었다.
가정해보자. 내가 못 견뎌하는 나의 흠결이 오래된 그 기억 탓이라고. 하지만 시간을 돌이킬 순 없다. 돌이킨대도 다른 시련이 없을리 없었다. 기시미 이치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건 '내가 내 삶에 부여받은 과제'였다.
p. 40
자신의 삶을 살며 부여받은 과제는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p. 233
트라우마는 우리가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해 드는 구실, '인생의 거짓말'이다.
그리고 과제를 풀지, 그대로 둘 지 결정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엄마를 붙들고 눈물바람을 했던 건- 그 과제 대신 해달라 억지를 쓴 것에 불과했다.
p. 59
과거의 경험이
지금이 나를 결정하지 못한다.
p. 63
내게 상처를 준 그의 말에
내가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와의 관계가 달라졌다.
p. 230
우리는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영향을 받는다.
한창 예민한 시절, 할머니는 내게 그러셨다.
"기지배는 필요없어. 아들이 최고야. 난 아들이 좋아."
오랜 시간 상처로 남았던 그 말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으로 생각했다. 할머니는 딸이 없었다. 무뚝뚝한 세 아들을 한 상에 두른 명절은 할머니의 날이었지만 나머지 삼백오십몇밤, 할머니는 쓸쓸한 노인이었다. 그 시간을 애써 이기려 그리 말하고 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손녀 따윈 필요없었던게 아니라.
난 참 사랑받고 싶었고,
할머닌 참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그 뿐이다.
오랜시간 나를 억눌러왔던 건 '할머니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형편없는 나'의 굴레였다. 하지만 이제 아니란 걸 안다. 난 충분히 사랑스럽고, 충분히 나를 사랑한다. 그걸 알았으니 더 이상 그때 그래서 내 삶이 엉켰다는 '인생의 거짓말' 따윈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게 지금 / 여기서 / 내가 할 수 있는 내 인생의 과제다. 이제 난 충분히 괜찮다.
p. 65
지금, 여기서 가능한 일을 시도할 때- 무언가는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