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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Sep 28. 2017

할머니의 추석 봉다리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67

내 할머니는 괴팍했다.


남의 자식인 며느리들 보다

당신 자식인 아들들이 

중한 마음을 숨기지 못해

세 며느리는 오랜 시간 속앓이를 했다.


명절은 그 속앓이의 절정이었다.


무뚝뚝한 아들 셋은 TV 채널만 돌려댔고

손자들은 근처 PC방으로 몰려나간지 오래건만

굳은 표정의 세 며느리만 내내 부산했다.


큰 상 옆 작은 상에 둘러앉아

밥 한 술 뜨고, 부엌 한 번 들락거리던

며느리 셋은 시계만 봤다. 

할머니는 아들들만 봤고,

아들 셋은 며느리 셋의 눈치만 봤다. 


시계 바늘이 어느 숫자인가를 지나면

아들 중 누군가가 어색하게 몸을 일으켰다.

주섬주섬 옷을 입으면

며느리도, 손주들도 말없이 따라 입었다. 


'좀 더 있다 가지.'

힘없이 혼잣말 하며 

할머니는 서둘러 방에 들어가셨다. 

나오는 손엔 어김없이 

검고 구깃한 검정 봉지가 들려 있었다.


'또...'

떠나는 두 며느리의 눈빛도 늘 같았다.

사양도 감사도 없이 받아 가방에 구겨넣곤 

서둘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검정 봉지 안엔 고무줄로 가지런히 묶인

스타킹이 들어 있었다.



...


그 스타킹의 정체를 알게 된 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한참 후의 어느 순간이었다.


나는 TV를 보고 있었다.

시사프로그램이었는데, 

노인정을 찾아 잡동사니를 파는 이들의 얼굴이

모자이크 뒤에서 움직였다. 


'아, 저거였구나.'


그들이 웃어주고 어깨 주무르며

팔아치웠다는 물건 중에 스타킹이 있었다.

딸 주라고, 며느리 주라고 하며 팔았겠지.

할머니는 그걸 사들고 서랍에 쟁이며

일년에 이틀을 기다린 거다.


모자이크 뒤의 그들이 고마웠다.

참 외로웠을 그 시간,

그들이 노인정에 온 날은

그래도 좀 덜 외로우셨을 거다.


...


오지 않은 며느리, 화가 나서 먼저 간 며느리 몫이 남은 날이면

내게도 몇 번 인가 검정 봉다리가 돌아왔다.


그 봉다리, 신지 않을 거라도 받을 걸. 

363일을 원망하고 미워했으니

이틀이라도 웃으며 손녀답게 굴걸.


할머니를 이해하기엔 난 너무 어렸다. 

자식 기르며 그 마음이 조금 보이게 되니

그 시간을 만회할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할머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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