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73
아이가 아팠다.
아이 얼굴에 물린 자국 두 어 개가 보였다.
모기인 줄 알았다.
두 어 개가 순식간에 십여개가 됐다.
할로윈 젤리 알러지인줄 알았다.
끔찍한 수포가 온몸을 덮었다.
아이는 긁고 우리는 말렸던 긴 밤을 지나
아이는 수두 판정을 받았다.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물에 젖은 종이 마냥 속수무책이었다.
휴가를 썼다.
참 오랜만에 아이와 단둘이구나.
수두가 치명적인 건
'고립'에 있었다.
전염성이 워낙 강해
어디도 나가서는 안된다.
말만 나눠도 열에 아홉은 옮는다니
꼼짝없는 유배다.
치명적인 또 한 가지는
'흉터'였다.
남편의 얼굴엔 움푹 패인 상처가 있는데
그게 수두의 흔적이란 걸 처음 알았다.
남편은 아이가 얼굴을 긁을라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언제 긁을지 모르니
보호자에게 딴짓의 여유는 없다.
어디 나갈 수도
딴짓을 부릴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밀착육아 24시랄까.
하지만 수두 확진 만3일이 지난 지금,
참 즐겁다.
아이가 나아가고 있어서,
미처 몰랐던 아이를 알수 있었기에 즐겁다.
아이는 내가 알던 것보다 고집쟁이였다.
(구슬놀이를 하다 싸울 뻔)
아이는 내가 알던 것보다 풀을 잘 뽑았다.
(일타쌍피 마당 잡초뽑기 놀이)
아이는 내가 알던 것보다 협상에 능했다.
(밥 잘 먹겠다는 약속은 최고의 협상 카드)
그리고 하나 더.
아이의 새끼 발가락엔 미처 몰랐던 점이 있었다.
(4년 째 목욕담당은 아빠)
크고 작은 비극과 불운은
언제나 우리 삶에 불쑥 등장한다만,
그 비극과 불운 어딘가엔
뜻밖의 행복과 행운 역시 도사리고 있다.
수두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발가락 점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