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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Nov 07. 2017

수두에도 행복이 있을수두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73

아이가 아팠다.


아이 얼굴에 물린 자국 두 어 개가 보였다.

모기인 줄 알았다.


두 어 개가 순식간에 십여개가 됐다.

할로윈 젤리 알러지인줄 알았다.


끔찍한 수포가 온몸을 덮었다.

아이는 긁고 우리는 말렸던 긴 밤을 지나

아이는 수두 판정을 받았다.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물에 젖은 종이 마냥 속수무책이었다.



휴가를 썼다.

참 오랜만에 아이와 단둘이구나.


수두가 치명적인 건

'고립'에 있었다.


전염성이 워낙 강해

어디도 나가서는 안된다.

말만 나눠도 열에 아홉은 옮는다니

꼼짝없는 유배다.


치명적인 또 한 가지는

'흉터'였다.


남편의 얼굴엔 움푹 패인 상처가 있는데

그게 수두의 흔적이란 걸 처음 알았다.

남편은 아이가 얼굴을 긁을라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언제 긁을지 모르니

보호자에게 딴짓의 여유는 없다.


어디 나갈 수도

딴짓을 부릴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밀착육아 24시랄까.



하지만 수두 확진 만3일이 지난 지금,

참 즐겁다.


아이가 나아가고 있어서,

미처 몰랐던 아이를 알수 있었기에 즐겁다.


아이는 내가 알던 것보다 고집쟁이였다.

(구슬놀이를 하다 싸울 뻔)


아이는 내가 알던 것보다 풀을 잘 뽑았다.

(일타쌍피 마당 잡초뽑기 놀이)


아이는 내가 알던 것보다 협상에 능했다.

(밥 잘 먹겠다는 약속은 최고의 협상 카드)


그리고 하나 더.


아이의 새끼 발가락엔 미처 몰랐던 점이 있었다.

(4년 째 목욕담당은 아빠)



크고 작은 비극과 불운은

언제나 우리 삶에 불쑥 등장한다만,


그 비극과 불운 어딘가엔

뜻밖의 행복과 행운 역시 도사리고 있다.


수두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발가락 점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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