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74
요즘 우리 집에서 유행하는 놀이가 있다.
얼-스퀘이크!
얼-스퀘이크!
얼-스퀘이크!
아이가 이 말을 외치면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엎드려야 한다.
어린이집에서 지진대비훈련을 한 모양인데
지진이 뭔지 알 리 없는 아이는
엄마아빠와 놀자며 얼-스퀘이크를 외친다.
아빠가 제대로 엎드렸는지
자꾸 곁눈질하는 아이를 보며
오늘도 배꼽을 다해 웃었다.
그러고 보면 말이다.
아이가 아니라면 웃을 일이 있을까.
'머리가 너무 아프긴 한데...
진짜로 아픈 건 아냐!'
(머리가 아프면 아이스크림을
못 먹는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이게 대체 무슨 맛이람!'
(엄마의 최초 밥솥 카스테라 시식 후)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자꾸 나를 재우고 몰래 나가?'
(재우고 나가려다 딱 걸린 순간)
아이가 태어난 후로
웃음의 9할은 아이다.
그 웃음 한 방에
아이로 인해 고단했던 열 번이 잊혀진다.
...........
그러고보면
효도는 명백한 이중과세다.
이렇게 실컷 웃으며 키워놓곤
'내가 너 키웠으니 너 나한테 잘해라'
하는 건 좀 그렇다.
이미 세금을 낸 사실을 잊어버린
성실한 납세자에게 고지서를 자꾸 내미는 격.
그런데 지금,
난 왜 엄마 줄 유니클로 후리스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실실 쪼개고 있는 걸까.
고지서도 없는 세금을
못 내서 안달인걸까.
누가 그랬다.
나의 슬픔, 나의 행복을
구태여 타인에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은
내 슬픔에 되려 웃고
내 행복에 되려 우는 것이
대부분의 인간관계인 까닭이라고.
타인이 행복한 만큼 내가 위축되고
타인이 불행한 만큼 내가 위로받는
우리는 '제로썸'이라고.
단, '부모-자식'은 예외다.
내가 보낸 후리스를 입고 패션쇼를 할 엄마를 상상하면 좋다.
내가 만든 카스테라를 와구와구 먹을 아이를 상상하니 좋(았)다.
(아이는 뱉었다.)
타인의 행복이 내 행복으로 적립되는 특수한 관계.
제로썸 말고 서로썸.
꽃이 지고서야 봄이었음을 안다 했다.
공기처럼 당연했던 가족을 잃고서야
우린 서로가 서로의 행복이었음을 안다.
이중납세할 부모님이 계심에 감사하다.
무한납세자 딸이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