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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Nov 07. 2017

효도 = 이중과세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74

요즘 우리 집에서 유행하는 놀이가 있다. 


얼-스퀘이크!

얼-스퀘이크!

얼-스퀘이크!


아이가 이 말을 외치면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엎드려야 한다. 


어린이집에서 지진대비훈련을 한 모양인데

지진이 뭔지 알 리 없는 아이는 

엄마아빠와 놀자며 얼-스퀘이크를 외친다. 


아빠가 제대로 엎드렸는지

자꾸 곁눈질하는 아이를 보며

오늘도 배꼽을 다해 웃었다. 



그러고 보면 말이다.

아이가 아니라면 웃을 일이 있을까. 


'머리가 너무 아프긴 한데...

진짜로 아픈 건 아냐!'

(머리가 아프면 아이스크림을

못 먹는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이게 대체 무슨 맛이람!'

(엄마의 최초 밥솥 카스테라 시식 후)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자꾸 나를 재우고 몰래 나가?'

(재우고 나가려다 딱 걸린 순간)



아이가 태어난 후로

웃음의 9할은 아이다. 

그 웃음 한 방에

아이로 인해 고단했던 열 번이 잊혀진다.



...........



그러고보면

효도는 명백한 이중과세다.


이렇게 실컷 웃으며 키워놓곤

'내가 너 키웠으니 너 나한테 잘해라' 

하는 건 좀 그렇다. 


이미 세금을 낸 사실을 잊어버린

성실한 납세자에게 고지서를 자꾸 내미는 격. 


그런데 지금,

난 왜 엄마 줄 유니클로 후리스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실실 쪼개고 있는 걸까.


고지서도 없는 세금을 

못 내서 안달인걸까.



누가 그랬다. 

나의 슬픔, 나의 행복을

구태여 타인에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은

내 슬픔에 되려 웃고

내 행복에 되려 우는 것이

대부분의 인간관계인 까닭이라고. 


타인이 행복한 만큼 내가 위축되고

타인이 불행한 만큼 내가 위로받는

우리는 '제로썸'이라고.


단, '부모-자식'은 예외다. 

내가 보낸 후리스를 입고 패션쇼를 할 엄마를 상상하면 좋다.

내가 만든 카스테라를 와구와구 먹을 아이를 상상하니 좋(았)다. 

(아이는 뱉었다.)


타인의 행복이 내 행복으로 적립되는 특수한 관계.

제로썸 말고 서로썸. 


꽃이 지고서야 봄이었음을 안다 했다.

공기처럼 당연했던 가족을 잃고서야

우린 서로가 서로의 행복이었음을 안다.


이중납세할 부모님이 계심에 감사하다.

무한납세자 딸이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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