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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an 08. 2018

도둑을 이해하는 법

태어나 처음 도둑을 맞았다.

온갖 것을 다 털어갔고 문을 부숴놨다.


할짓이 없어 남의 것을 훔치냐며

얼굴도 나이도 뭣도 모르는 이를 욕했다.


.........


오늘 저녁은 피자였다.


퇴근 시간에 맞춰 치즈피자를 주문했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얼굴을 마구 때려대는데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행여 자기가 먼저 잠들거든

엄마(피자)가 오면 꼭 큰소리로 깨워달랬다던

딸래미의 목소리가 선명했다.


내 눈 1mm 앞을 스치고 간

우산살에도 화가 나지 않았지만

피자를 식게 하는

꽉 막힌 신호등에는 성질이 났다.


걸음이 빨라졌다.

저 멀리 발자국 소리를 소머즈처럼 듣고

목숨걸고 달려올라가

막 닫히려던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그렇게 나른 피자를 딸은 참 맛나게 먹었다.


고사리손 쪽쪽 빨아가며

옷에 슥슥 묻혀가며

매운 건 엄마 타박해가며

피자 한 판을 온가족이 동냈다.


내가 쓴 만원짜리 두 장 중

이보다 값있었던 게 있었을까.





어쩌면 도둑의 아이도

피자를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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