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Mar 19. 2018

그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쉿.

20분. 

끔찍하게 긴 시간이었다. 




5살 짜리 딸이 졸라 실내 놀이터에 간 날이었다.


오자마자 쥬스를 한 컵 마신 딸은

여기저기를 누비더니

실내 놀이터 풍선 미끄럼틀 위에 올라갔다.


그게 20분 전의 일이다. 




딸은 당황한 듯 보였다. 

쪼끄만 애들 노는 곳에서 놀던 애가

나름 고난이도 미끄럼틀에 당황한 게지.


힘을 준답시고 밑에서 

온갖 재롱을 다 떨었다. 


하지만

쌍따봉을 발사하던 팔이 아프고

딸의 이름을 부르던 목이 아프고

방방 뛰던 발바닥이 아프도록

딸은 내려오지 않았다. 


딸은 그냥 20분 째 멀뚱멀뚱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따금 '엄마, 엄마' 하고 불렀지만

외침이 아니라 혼잣말에 가까웠다. 

일면식도 없는 다른 아이들이 옆에서

같이 내려가자고 꼬셔도 반응하지 않는다.


나는 어찌 할 줄을 몰랐다. 


처음엔 '애가 왜 저러나' 의아했다. 

스스로 내려올 수 있게 기다려주자 싶었다. 


하지만

엄지척을 날려도 방방 뛰며 두 팔을 벌려도

미동조차 하지 않자

답답함에 속이 끓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부모들이 

한마디 씩 거들자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또래 다른 아이들이 구르고 넘고 깔깔대며

신나게 내려오는 걸 보며 자괴감마저 느꼈다.


이해할 수 없음과 답답함, 

속상함이 20분동안 눈덩이처럼 커졌다. 


결국 아이들 틈바구니에 섞여

내가 올라가야 했다. 


'아우 저 녀석을 진짜!'




'엄마!'

아이는 내심 기다렸는지 

모기만한 소리로 나를 부른다. 


일단 아이 손을 잡고 하강 자세를 취하려는데,

아뿔싸. 


무서웠다


올려다본 20분과

내려다본 2초는 전혀 달랐다. 


서른 몇 살 어른에게도 그럴진데,

아이는 어땠을까. 


아이에 대한 답답함은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급격히 태세를 전환했다. 


같은 높이에서 같은 것을 보았을 뿐인

2초 만에 그랬다. 





이미 차갑게 굳은 감자튀김을

오물오물 먹는 아이를 지켜보며

숨을 돌리고 있으니

잠시 회사에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미끄럼틀 아래서 20분을 기다리며 

답답한 마음에 

남편에게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했던 바,

얼굴에 근심이 잔뜩 서려 있었다. 


지친 표정으로 미처 전하지 못한 

사건의 결말을 브리핑하려는데,

딸이 감자튀김을 꿀떡, 삼키고는 손을 번쩍든다.


"아빠! 나 풍선 미끄럼틀에 도전했었다!"


남편은 아이를 번쩍 안아올리며 내게 물었다. 

"뭐야, 엄마랑 말이 다른데?"


난 아이가 참 무서워했노라 말하려 했던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맞어. 그랬어. 

우리 딸 엄마가 다 봤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